계약조건

6. 집안일 분담은 철저하게







 사자는 소파에 앉아 다림질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몹시 불편하다. 물론 하얀 셔츠 위를 지나가며 증기를 푸슉푸슉 뿜는 스팀 다리미의 성능은 좋았고, 빳빳하게 다려지는 셔츠도 만족스러웠다. 순백의 자태를 뽐내며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리는 결과물 또한 그의 마음을 보람으로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의 어딘가에서 발아된 불편함의 씨앗이 늘 하는 다림질 때문은 아니라는 거다.


 소파 위에 누가 바늘을 세워뒀었나 싶게 사자의 앉은 자리를 순식간에 불편하게 만든 건 사실 따로 있었다. 갑자기 방에서 튀어나오더니 그의 앞에서 다리를 꼬고 무릎 위에 신사를 앉힌 채 책 속에 빠져든 도깨비. 사자를 불편하게 만든 건 바로 그 김신이었다.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죽는 병에 걸렸나. 활자 중독인가 싶게 늘 손바닥에 책을 붙이고 다니는 신이, 늘 앉는 그 자리에 앉아, 늘 그렇듯 독서에 빠져있는 것이 사자는 새삼 불편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거실 공기가 사자의 어깨를 내리 누르는 것만 같았다. 꼭 도깨비가 우울할 때마다 거실 한복판에 둥실 만들어내곤 하던 짙은 흘레구름이 제 머리 위를 따라다니는 기분이었다. 습하고, 덥고, 갑갑했다. 사자는 다림질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올렸다. 머리 위에 구름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증기라곤 다리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다였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답답할까. 사우나에 들어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열이 오르고 목울대 아래가 꽉 조였다. 사자는 하는 수 없이 다리미를 놓고 자세를 바로 했다. 반쪽만 다려진 셔츠가 도로 옷걸이에 걸리는 것을 곁눈질로 힐끔거린 신이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왜 다 안 다리고?”



 특별히 궁금해서 물어본 것은 아니라지만 대답 없이 일어서는 사자에 의해 신의 질문은 허공에 던져진 혼잣말이 되었다. 앉은 자리를 말끔히 정리한 사자는 셔츠를 제 방 붙박이장에 가지런히 걸어 놓은 뒤 부엌으로 들어섰다. 밀린 집안일은 다림질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신이 앉아있는 거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등을 지고 식탁에 앉은 사자의 손엔 쟁반 하나가 들려있었다. 까지 않은 마늘 몇 쪽이 담긴 쟁반을 식탁 위에 놓고 칼을 잡는 사자의 자세가 꽤 능숙했다. 마늘 머리를 칼끝으로 톡 잘라내고 껍질을 벗겨내자 어렵지 않게 매끈한 속살이 드러났다.


 한참 그렇게 빈 그릇에 깐 마늘을 채우던 사자의 손이 뚝 멈춘 것은 제 옆의 빈 의자가 스르륵 뒤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의자가 스스로 의지를 갖고 움직인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사자는 의자를 빼 앉는 이를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그게 김신이라는 것쯤은 그냥도 알 수 있었다. 설마 신사는 아닐 테니까.


 사자를 따라 어설프게 마늘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한 신이 괜히 툴툴거렸다. 요즘 마늘 껍질 벗겨주는 기계도 있는데 그런 것 좀 사면 얼마나 편하겠느냐고. 숙련된 사자의 솜씨를 따라가지 못하는 신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사자는 또 가슴 한편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조금 전 거실 공중을 배회하던 더운 공기가 신을 따라와 다시 사자의 머리 위에 내려앉는 것 같았다. 사자는 다리미를 놓았던 것과 같은 자세로 손에 쥐고 있던 칼과 마늘을 툭 내려놓았다.



 “야.”



 사자가 신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둬. 내가 할 테니까.”



 긴 손가락 끝으로 더듬더듬 껍질을 벗기던 신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랬다가 나중에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집안일 지가 다 한다고 생색이란 생색은 있는 대로 다 내려고?”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집안일을 잘 했는데? 할 거면 청소나 하든가. 너 청소 담당이잖아.”

 “이거 다 하고.”



 마늘 한 쪽이 그릇 안으로 데굴 굴러 들어갔다. 어느새 마늘 까기에 열중한 신의 모습에 사자는 더 말하기를 포기했다. 그들의 주위를 맴도는 평소와 다른 공기의 온도는 아무래도 사자 혼자만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깨비가 저렇게 태연할 수는 없는 거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자는 자신 혼자 이렇게 유난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며칠 전의 ‘그날’ 이후로 사자는 쭉 이런 상태였다. 왠지 신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어려웠고, 그와 가깝게 있으면 느닷없이 주위의 온도가 올라갔다. 온도가 올라가면 심장이 빨리 뛰었고, 심장이 빨리 뛰면 그의 몸도 달리는 기관차처럼 달궈졌다. 늘 차갑기만 하던 손끝이 난로에 데인 것처럼 화끈거렸고 얼굴에는 피가 쏠렸다. 그 과정은 신과 함께 있을 때면 언제나 예외 없이 순차적으로 진행됐고, 이미 몇 번 신에게 들켜 ‘더워? 얼굴 벌게졌는데?’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사자는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스스로 납득할만한 설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신에게 설명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이렇게 신과 단 둘이 남게 되는 자리는 피하고 싶었다. 적어도 사자가 지금의 증상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그러나 한 집에 살며 둘만 남는 경우를 아예 만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신이 눈치도 없이 자꾸 제 뒤를 따라 붙을 때는 정말 곤란했다. 사자는 자신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오르는 순간에 이르는 것까진 피하고 싶어 이번에도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럼 이거 네가 다 해.”

 “뭐? 같이 해!”

 “일을 효율적으로 해야지, 뭣하러 둘씩이나 매달려서 해.”

 “언제는 내가 안 도와준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더니?”

 “…그땐 그때고. 지금은 달라.”



 그때와 지금이 뭐가 다른지 명쾌하게 얘기해주진 못했지만 하여간 너 혼자 다 하라는 말로 얼버무린 사자는 급히 도망치듯 부엌을 벗어났다. 다시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그건 일종의 전조 증상이었다. 이대로 두면 또 불에 데인 것처럼 온 몸이 뜨거워질 게 분명했다.


 사자는 달아오르는 열을 식힐 무언가가 필요했고, 결국 향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차가운 물줄기를 받아내고 나면 좀 괜찮아질 것 같았다. 저승사자라고 해서 추위를 못 느끼는 건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게 필요했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차갑게 그의 이성을 깨워줄 것이.


 수도꼭지를 최대한 오른쪽으로 돌린 사자가 물을 틀자 머리 위로 얼음장 같은 물이 쏟아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의 차가움이었지만, 오히려 그 편이 더 나았다. 알 수 없게 제 몸을 채우는 열기보다는.


 그의 안에서 열이 돌면 항상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약한 조명을 받으며 빛나던 눈동자와 제 얼굴에 훅 끼치던 뜨거운 숨, 그것에 묶여버린 것처럼 쉽사리 피해지지 않던 열기. 그날 밤 눈이 마주치던 도깨비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상극으로 이뤄진 도깨비의 모든 것이 낯설게 그의 안을 채우고, 익숙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날 불러.’

 그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가를 맴돌면 사자는 저도 모르게 그를 부르고 싶어지곤 했다. 부르고 싶어진다는 건 아직 불러본 적은 없으나 그렇게 하고 싶어진다는 거였다. 그건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든 도깨비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걸 예견하는 것만 같았다.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사자의 의지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일 같은 건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승사자가 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사자 역시 그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니 누군가를 불러야 할 때엔 자연스레 ‘야, 너’라든가, ‘그 자, 이 자, 저 자’라는 호칭이 입에 붙었다. 다른 이의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는 경우는 대부분 망자들을 데려갈 때에 해당되었다. 그 이름 역시 저가 부르고 싶어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하기 때문에 부르는 것이었다. 그 이름을 불러야 하는 목적이 뚜렷했다.


 그런데 도깨비의 목소리가 맴돌면 자꾸만 목적 없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 욕구가 강렬히 치솟았다. 직접 제 입에 담아본 적 없는, 그를 닮은 이름을. 김 신. 그 이름을 한 자 한 자 힘주어 부르고 나면 해소될 것 같은 답답함이 그의 가슴을 팔딱이게 했다. 그럼에도 부를 수가 없는 건, 사자 스스로도 아직 채우지 못한 빈칸 때문이었다. 그를 부를 수는 있으나, 그를 ‘왜’ 부르는 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욕구는 분명한데 이유가 없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였다. 인간들이 신을 부를 때엔 분명하게 바라는 게 있다. 나를 살려주세요. 혹은 나를 죽게 해주세요. 그것보다 더 사소한 이유로 부를 때도 많았다. 내 여자친구와 헤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시험에 붙게 해주세요. 취직하게 해주세요. 그 수많은 것이 이유가 됐다. 하물며 덕화가 신을 부를 때에도 그랬다. 그는 말간 얼굴로 삼촌, 하고 부르며 용돈이나 카드, 혹은 선물을 바랐다.


 그나마 이유 없이 신을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기타 누락자, 그러니까 도깨비 신부 정도가 다였다. 그녀를 향해 이유가 없다고 분류하기엔 또 조금 애매한 것이, 그녀가 도깨비 신부라는 것 자체가 곧 충분한 이유가 됐기 때문이다. 도깨비 신부니까 이유 없이 그를 불러낼 수도 있는 거였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사자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유 없이 그를 불러낼 수 있는 존재인가. 내 존재 자체가 그를 불러낼 이유가 되는가.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오.


 사자는 떠오르는 목소리를 애써 밀어내고 현실로 돌아왔다. 쏟아지는 물에 온 몸이 따가울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야 생각을 멈추고 물을 잠갔다. 너무 오래 물을 맞고 있었는지 물줄기가 사라지자 몸이 다 떨렸다. 사자는 찬장에서 두툼한 수건 한 장을 꺼내 꼼꼼하게 물기를 닦아냈다. 몸을 닦은 것에 비해 젖은 머리를 터는 손길은 별로 성의가 없었다. 어차피 말리면 되니까. 머리카락 끝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든 말든 건성으로 닦아낸 사자는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사자의 손에 의해 활짝 열린 문은 1초 후 다시 쾅 닫히고 말았다. 그 또한 사자에 의해서였다. 사자는 자신이 문을 열었을 때 바로 앞에서 본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거기서 뭐 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자는 문 앞에 멀뚱히 서 있던 도깨비를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찰나에 본 도깨비의 얼굴은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가늠할 수 없는 무표정이었고, 그게 사자를 더 당황스럽게 했다. 대체 왜 그런 표정으로 남이 샤워하고 있는 화장실 앞에 가만히 서 있는 거냐고.


 어차피 문을 닫아 보이지도 않지만 사자는 괜히 제 허리에 두른 수건을 더 단단하게 묶었다. 그 와중에 문 밖에서 덤덤한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소하라며.”

 “근데?!”

 “화장실 청소하려고.”

 “그걸 꼭 그렇게 기다렸다가 해야 해?!”



 사자는 자신이 샤워를 하며 했던 생각들이 혹 그에게 들리진 않았을지 걱정부터 되었다. 요즘 귀가 밝아진 도깨비 때문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긴 했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저렇게 지척에서 가깝게 서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상념에 빠져 있었으니까.


 바깥에서 오랜 기다림에 지친 도깨비가 ‘이제 청소해도 돼?’하고 묻는 게 들려왔다. 사자는 급하게 문을 걸어 잠갔다. 습기가 가득 찬 욕실 안에 딸칵거리는 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는 바깥에도 그대로 전해졌는지 도깨비가 문고리를 잡으며 흔드는 게 느껴졌다.



 “뭐야, 문은 왜 잠가? 다 씻은 거 아니었어?”

 “떠, 떨어져!”

 “안 나올 거냐고.”

 “나갈 거니까 문에서 떨어지라고! 변태야?! 사람 다 벗고 있는데 문 앞에서 기다리게?!”

 “우리 사우나까지 같이 갔던 사이 아닌가.”



 물론 그랬다. 그렇긴 한데,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사자는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이 역시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하여간 달랐다. 아직도 문 너머를 지키고 있는 도깨비가 답답해서 사자는 그냥 성을 내버렸다.



 “가라면 좀 가!”



 신이 사자의 말을 들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자는 잠잠해진 문 밖에 귀를 대고 기척을 살폈다. 야, 도깨비, 하고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을 때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사자는 깜짝 놀라 문에 대고 있던 귀를 떼어냈다.



 “네가 잊어버린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건데, 나 도깨비야.”

 


 도깨비의 입을 통해 흘러 나오는 말의 어조가 어쩐지 섬뜩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맘만 먹으면 이 문 안 열고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사자는 입을 떡 벌렸다. 저 도깨비 놈이 지금 뭐라는 거야? 그래서? 들어오겠다고? 사자는 복잡해진 머리를 쥐어뜯다가 혹시 몰라 수건 하나를 더 꺼냈다. 훤히 드러난 상박에 수건을 두르곤 잠긴 문을 빤히 노려봤다. 문 밖에서 뒤늦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허, 이제 와서? 사자는 어이가 없었다.



 “나 들어간다?”



 무슨 심보인지 예고처럼 고약하게 내뱉는 말에 사자는 기가 차서 잠금 장치를 풀고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사자는 보란 듯이 제 방으로 순간 이동했다. 도깨비를 마주치지 않고 방으로 들어온 사자는 아마 지금 활짝 열린 화장실 문 앞에 혼자 서 있을 그를 향해 소리쳤다.



 “너도 잊어버린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건데, 나도 저승사자거든?!”



 저만 순간 이동 할 줄 아나. 사자는 갑자기 이상한 쪽으로 차오른 도깨비의 장난기에 씩씩거리며 수건을 내던졌다. 자신은 요즘 들어 마음이 복잡해진 탓에 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원인을 제공한 도깨비 놈은 저렇게 속도 모르고 장난질만 심해져 간다는 게 분하기까지 했다. 역시 이 집에선 생각이라는 걸 할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집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신을 마주쳤고, 그러면 뭐든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사자는 급히 나갈 채비를 했다. 선약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일단 나가고 보자는 심정이었다.


 어찌나 빠르게 준비를 마쳤는지 문을 연 사자의 머리카락은 아직 물기가 밴 그대로였다. 코트를 팔뚝에 걸치고 그 손에 모자까지 챙겨 들고 나온 사자는 막 현관을 나서려는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린 도깨비의 목소리에 또 한번 놀라야 했다.



 “벌써 나가?”



 어깨를 움치며 돌아본 곳엔 바짓단을 걷고 막 화장실에서 나온 도깨비가 있었다. 그냥 사자를 놀리려고 한 장난인 줄 알았더니 화장실 청소를 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의 옷이나 얼굴 이곳 저곳에 물방울이 튀어있었다. 청소를 요란하게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맞추고 있는 사자를 향해 신이 아직 젖은 그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야, 너 그러고 나가면 감기 걸린다.”



 심상한 말투였다. 제 꼴도 말이 아닌 건 마찬가지면서 사자를 향한 핀잔과 걱정이 담겨 있었다. 사자는 너나 들어가서 옷 갈아입으라는 대답을 하려다가 관둬야 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뱉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사자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대답은 헛기침으로 대신하곤 젖은 머리 위에 그대로 모자를 눌러 썼다. 온리 드라이만 요하는 모자가 젖는다는 걱정보다 일단 집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현관문을 거의 박차듯 밖으로 나온 사자는 집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진 후에야 터질 듯 뛰어대는 제 심장위로 손을 올렸다. 손바닥으로 어린 애를 다독이듯 쓸어내려 봐도 쉽사리 가라 앉지가 않았다. 확실했다. 아무래도 심장이 고장이 난 거였다. 도깨비에게만 반응하도록. 사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좁고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서던 여자의 앞이 가로 막혔다. 여자는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큰 신의 등장에 겁을 먹은 듯 품에 안은 가방을 꼭 쥐며 경계했다. 그저 저를 내려다보며 두 눈을 꿈뻑거리고 있는 그를 향해 누구냐 물었다. 신은 그저 건조한 눈으로 말했다.



 “당신 볼 일은 이 쪽이 아니라, 저 쪽.”



 신은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큰 길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말하는 목소리는 심드렁했으나 어딘가 마음이 놓이게 하는 음성이었다.



 “빛을 따라가. 태생에 빛을 가진 이다. 빛이 어둠에 먹히기는 쉬워도 빛에 어둠이 스며들긴 어렵지. 당신은 그런 자다. 그러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엔 늘 빛을 따라가라. 이런 데엔 다신 오지 말고, 지금 만나려고 한 그 남자도 다신 만나지 말고.”



 뭐라 입을 여는 여자의 모습에 신이 그 말을 탁 자르고 말을 이었다.



 “품에 안은 그 돈도, 그 남자가 아니라 당신이 가지고. 다르게 쓰일 날이 올 테니까.”

 “…….”

 “이건 받고.”



 멍하게 저를 올려보는 여자에게 신은 샌드위치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곤 그녀의 머리에 새기듯 다시 말했다. 절대로 잊지 않아야 할 말을 각인하는 것처럼 분명한 목소리로.



 “기억해. 빛.”



 여자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녀가 들어서려고 했던 골목과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신이 코트 주머니 안쪽으로 푹 손을 찔러 넣었다. 방향을 잃은 빛이 다시 제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그 길 위에 작은 돌멩이 하나 걸리지 않기를. 그렇게 바라며 눈으로 툭, 툭, 길을 닦던 신의 뒤에서 시끄러운 고성이 들렸다.


 무언가 말을 내뱉는 소리 같았으나 발음이 불분명하고 욕지거리가 반이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어두운 골목에서부터 걸어 나오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돌아봤다. 요란한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가 개기름인지 포마드인지 모를 것으로 훌떡 넘어간 제 머리를 쓸어 올리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씨발! 그 새끼 거기 딱 잡아 놔, 알았냐?! 이 개새끼가 진짜!”



 듣고 있기도 괴로운 끔찍한 목소리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던 신과 남자의 시선이 언뜻 부딪쳤다. 순간 마주친 시선에서도 남자는 그의 천박한 성품답게 시비를 걸듯 눈썹을 씰룩거렸다. 신을 향해 위협적 표정을 지으며 빤히 바라보는 남자를, 신은 다른 이유로 그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남자가 보였다. 어둡고, 길이 없는 산길이고, 남자는 그 어딘가에 버려져 있다. 남자는 복부에 큰 상처를 입었다. 칼에 찔렸다. 그럴 만한 자였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칼을 맞아 죽어도 억울할 게 없는 남자였다. 입에서 쿨럭쿨럭 피를 토해내던 그는 어쩌지도 못하고 금방 숨이 넘어갔다. 주위엔 아무도, 아무 것도 없었다. 단 하나. 도깨비에게만 보이는 그 익숙한 모습은 빼고 말이다. 그의 혼이 빠져 나오기를 기다리는 창백한 얼굴의 저승사자. 새카만 모자를 눌러 쓴 얼굴 아래 드러난 입술이 유난히 붉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말갛게 빛나는 눈동자는 아무리 봐도 신이 아는 저승사자의 것이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던 영상이 사라졌다. 남자가 신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그의 입에선 여전히 험악한 욕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신은 머릿속으로 방금 보였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남자가 죽는 장면이 아니라, 그의 옆에 서 있던 사자의 모습을. 곧 쓰러질 듯 핏기 없이 질린 얼굴로 입술을 질끈 문 채 서 있던 그 얼굴을.


 무언가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버거워 보이는 그런 표정은 처음이라 신은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자가 거기에 왜 그런 얼굴로 있었지? 저승사자가 죽어가는 이의 옆에 모습을 드러낸 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신도 안다. 다만 그의 모습이 신경 쓰였던 거다. 왜 그렇게 죽어가는 이보다 더 해쓱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신은 그걸 계속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선 저를 향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신사에게 인사를 해주다 말고, 신은 문득 바로 옆에 놓인 우산 꽂이에 시선을 던졌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그것이 유난히 달라 보이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검은색의 긴 장우산을 보자 오늘 오후부터 전국적으로 겨울비가 퍼부을 거라고 했던 일기 예보가 떠올랐고, 동시에 물방울이 맺힌 머리카락을 흔들며 집을 나섰던 사자의 얼굴도 떠올랐다. 뒤이어 망자의 옆에서 다 죽어가는 듯하던 그 장면 속의 얼굴도.


 신은 쯧 혀를 찼다. 원인과 결과와 미래가 탁탁 맞아 떨어지는 듯한 과정이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게 감기 걸릴 줄 알았지, 내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문을 닫는 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신사의 꼬리가 시무룩 말려 들어갔다.











 모자를 털며 집으로 들어선 사자는 내일 세탁소에 갈 때엔 코트와 수트도 다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탁비가 많이 나오겠다는 생각도. 빗물에 푹 젖어버린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있다는 것은 그 다음에 든 생각이었다.


 오후 내내 비가 내렸다. 챙겨 나오겠다고 생각했던 우산을 집에 두고 나왔다는 건 비를 맞은 후에야 알았다. 나중에라도 우산을 챙길까 했으나 이미 맞아버린 비라 굳이 수고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했다. 이동을 할 때엔 비를 피해 다닐 수 있었지만 망자들을 인도할 때엔 그럴 수가 없었고, 특히 오늘은 외근이 많은 날이었다. 그 결과 내리는 비를 쫄딱 맞고 일을 하다 보니 속옷까지 다 젖어버린 꼴이었다.


 혹시 감기에 걸린 건가. 좋지 않은 예감이 빠르게 뇌리를 스쳤다. 저승사자인 주제에 몸이 아플 때엔 인간처럼 앓기도 한다는 것은 그럭저럭 익숙했지만, 맘 놓고 병원에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게 불편했다. 병원에 가려면 감수해야 할 게 많았다. 인간보다 확연히 낮은 신체 온도와 보장되지 않은 신분, 무심결에 스치는 손, 그런 것. 물론 손은 조심하면 되고, 저를 마주친 인간들의 기억은 조작하면 그만이었지만 어쨌든 그것도 피곤한 일임엔 분명했다.


 급한 대로 오늘은 집에 둔 상비약이라도 챙겨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사자가 아직 신발을 벗지 않은 채 현관 앞에 서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코트를 벗었다. 그때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린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건 신이었다. 그도 바깥에서 볼 일이 있었던 모양인지 우산을 쓰고 들어왔다. 사자는 그 모습을 그냥 힐끔 돌아보곤 말아버렸다. 그가 한 손으로는 우산을 쓰고, 나머지 한 손에는 왜 펴지 않은 우산 하나를 그냥 들고 있는지 좀 의문스럽긴 했지만 저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기에.


 무거운 코트를 낑낑거리며 벗은 사자가 마침내 거실로 한발자국 들어섰다. 바닥에 닿는 발바닥에서 찌걱거리며 물기가 흘러나왔다. 이대로 걸어 갔다간 온 집안에 물 웅덩이를 만들게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곧장 화장실로 향해야겠다 싶어 방향을 트는데 신의 목소리가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결국 다 젖었네.”



 뒤에서 들린 말의 뜻이 이상했다. 사자가 다 젖었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라지만, 그 앞에 ‘결국’이 붙은 건 좀 수상하지 않은가. 꼭 그렇게 될 줄 알았던 것처럼. 사자가 뭐라고? 하며 돌아보자 신이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걸 인식하게 되자 사자의 심장이 어김없이 고동을 울렸다.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 부러 턱을 치켜들며 왜? 하고 사납게 물었다. 그 사나운 기색과 다르게 신이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오자 사자는 결국 반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신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상체를 조금 숙였을 때엔 그와 반대로 상체를 뒤로 젖히기도 했다. 신은 그런 사자를 신경도 쓰지 않고 그의 얼굴만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은 괜찮아 보이는데.”



 아, 역시 너무 가까웠다. 사자는 신이 입을 열 때마다 자신의 얼굴에 훅 끼치는 더운 열기에 머리가 다 핑 돌았다. 심장에서 생산된 피가 온 얼굴로 쏠리는 것 같았다. 그걸 보던 신의 얼굴이 갸웃 돌아갔다.



 “열이 조금 나는 건가.”



 그렇게 말한 신의 손이 사자의 얼굴로 뻗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그의 이마를 향해 다가오는 큰 손을 보고 사자는 뱀이라도 본 듯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냥 한 걸음 물러난다는 게 힘 조절을 잘 못 했는지 그대로 벽에 등이 붙어버렸다. 눈 깜짝할 새에 거실 끝의 벽에 달라붙은 사자를 보고 신은 황당한 얼굴로 굳어버렸다. 그를 향해 뻗었던 손이 허무하게 허공만 휘젓다가 내려갔을 때에 신은 어이가 없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뭐냐, 너.”

 “뭐… 뭐가.”



 모르는 척 되묻긴 했지만 사자도 자신이 오버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네가 가까이에 오니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고 열이 오른다는 소리는 도저히, 절대로, 할 수가 없었다.



 “너 며칠 전부터 계속 이상하잖아.”



 신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하는 말에 사자는 곧장 답했다.



 “안 이상해.”

 “안 이상하다고? 나랑 눈만 마주쳐도 못 볼 거 본 것처럼 눈 돌려버리고, 손만 뻗어도 지금처럼 벽에 붙어버리는 게 안 이상하다고?”



 신은 아무래도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인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옆자리에만 앉아도 돌처럼 굳어버리고, 나한테서 무슨 이상한 냄새라도 나는 것처럼 피하는 게 넌 진짜 안 이상하다고? 뭐 나한테서 썩은 내라도 나냐?”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라면 그건 정말 오해였다. 썩은내가 아니라 좋은 냄새가 나서 곤란하다면 또 모를까. 하여간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사자는 자신을 몰아붙이는 신을 향해 저 나름대로의 항변을 했다.



 “원래 저승사자는 누가 가까이에 있는 거 싫어해! 그렇게 갑자기 스킨십 하는 것도 싫어하고! 네가 익숙해지든가!”

 “그런 건 계약서에 없었던 것 같은데.”

 “계약서가 문제가 아니라, 그건 기본이야. 예의라고.”

 “예의는 이렇게 대놓고 피하는 게 예의가 아닌 거지.”



 지지 않는 신의 대답에 사자는 말문이 막혔다. 맞는 말이긴 했다. 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예의 없이 그를 피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속엔 저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에 사자도 조금 억울했다. 어쨌든 사자가 이런 가까운 거리감에 익숙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고, 도깨비는 그런 사자를 아랑곳 않고 너무 불쑥불쑥 사정 범위를 침범하곤 했다. 가뜩이나 시도 때도 없이 뛰는 심장에 곤란한데, 도깨비까지 저렇게 비협조적이면 사자는 제 심장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이게 날 탓할 문제만은 아니지 않나. 사자는 입술을 꾹 깨물며 그와 눈을 맞추다가 한참 뒤에 말을 꺼냈다.



 “그런 애틋한 스킨십 같은 건 나 말고 도깨비 신부랑 해.”



 맥락 없이 튀어나온 말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듣고 있던 도깨비의 눈이 조금 놀란 듯 커지는 것만 봐도 그랬다. 사자는 자신이 이상한 말을 했다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지만 이미 혀끝을 떠난 말을 주워 담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기억을 지우는 능력이 있기는 하나 그걸 써먹지 못할 도깨비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비가 내려 축축하게 젖어버린 공기와 함께 내려앉은 정적을 뚫고 신의 건삽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 그럼.”



 뭐가 그렇다는 건지. 사자의 말대로 애틋한 스킨십은 도깨비 신부랑 하겠다는 건지, 그냥 대화를 끝 맺기 위한 무의미한 대답인지, 그리고 저는 왜 그 속뜻을 이렇게나 궁금해하는 건지. 사자는 차마 도깨비에게 묻지 못한 물음들을 도돌이표처럼 몇 번이고 떠올렸다.


 신이 먼저 제 방으로 들어가고 혼자 남은 거실에서도 한참 발을 떼지 못했다. 물기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며 그의 체온을 앗아가고, 다시 추위가 찾아 들었을 때에야 정신을 차렸다. 우선 씻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화장실로 향하던 그는 돌연 제가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런 애틋한 스킨십. 자신을 향했던 신의 손을 두고 사자는 ‘애틋한 스킨십’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손끝에서 애틋함을 느꼈던가.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였나. 만약 애틋함을 느꼈다면 그건 자신이 느낀 것인가, 신에게서 나온 것인가. 모르겠다. 알 수 없었다. 그저 머리가 조금 아팠다.











 “삼촌들!”



 아침 시간이었다. 신이 스테이크를 써는 소리만 고요하게 들려오던 집안으로 덕화의 목소리가 울렸다. 신은 그런 덕화를 짧은 시선으로 일별하곤 왔어, 하고 인사한 게 다였다. 덕화는 먹기 좋게 썰어낸 스테이크를 포크로 콕 찌르는 신의 모습을 보곤 아쉽다는 듯 말했다.



 “벌써 아침 먹어? 같이 먹으려고 내가 이거 사왔는데.”



 덕화가 제 양손에 들고 있던 노란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렸다. 봉투의 모양으로 봐선 샌드위치나, 햄버거나, 그냥 빵이나, 여하튼 그 비슷한 것들로 보였다. 덕화는 왜 이렇게 아침을 일찍 먹느냐며 봉투를 열었다. 그의 기준에서 따지자면 ‘벌써’겠지만, 신에겐 이미 10시가 넘은 시각을 ‘벌써’라고 칭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신과 사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9시쯤 아침 식사를 마치곤 했으니까. 그러니 오늘은 오히려 평소보다 늦은 편이었다.


 덕화의 손에 의해 차려진 것의 정체는 간단한 브런치 토스트였다. 비프스테이크가 곁들여진 메뉴는 아마도 신의 것이라고 사온 것일 테고, 싱싱한 샐러드와 부드러운 크림 치즈가 곁들여진 메뉴는 아마도 사자를 위한 것이었을 테다. 나름 취향을 잘 안다고 공들여 메뉴를 고른 티가 났다. 그걸 식탁 위에 펼쳐 놓은 덕화가 신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식탁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근데 끝방 삼촌은? 벌써 나갔어?”



 덕화의 물음에 신의 포크가 접시 위로 탁 내려갔다. 그 소리가 꽤 날카로워 덕화는 살짝 어깨를 떨어야 했다.



 “아니.”

 “그럼?”



 신이 슬쩍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사자의 방 문을 보며 말했다.



 “밥 먹으라고 몇 번을 불러도 아주 들은 척도 안 하신다!”



 신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 모습에 덕화는 이 삼촌들이 또 싸웠구나, 하고 더 묻지 않아도 알조라 고개를 주억거리기만 했다. 둘이 싸우는 건 이제 일상이라 걱정될 일도 아니었지만 사자의 몫으로 사온 메뉴가 남을 게 걱정이었다. 그대로 싸뒀다가 나중에 먹으라고 해야 하려나. 그런 고민을 하며 음식을 다시 포장백 안으로 넣으려던 덕화의 손이 딸칵거리며 열리는 문소리를 듣고 일순 멈췄다. 소리가 들린 곳으로 눈을 돌리자 말끔한 출근 복장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자가 보였다. 덕화가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끝방 삼촌, 마침 잘 나왔어요. 이것 좀 먹-”

 “나 출근.”



 덕화의 말을 끊으며 튀어나온 사자의 목소리가 메마른 나무처럼 쩌저적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그 목소리에 신의 눈이 사자를 향했으나 사자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듯 말없이 모자를 눌러 썼다. 그들 사이에서 말을 꺼내는 것은 오로지 덕화였다.



 “끝방 삼촌 목소리가 왜 그래요?”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목소리가 완전 갔는데? 어디 아파요?”



 덕화의 걱정이 담긴 물음에 사자는 괜찮다며 도리질을 쳤지만, 사실 그리 괜찮은 상태는 아니었다. 목소리만 이상한 게 아니라 몸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갈급증이 이는 것처럼 목구멍이 쩍쩍 말랐고, 그렇다고 물을 들이키면 껄껄한 모래가 타고 넘어가는 것 같았다. 덕분에 어제 새벽부터 물 한 모금 제대로 넘기기가 어려웠다. 먹은 게 없으니 몸에선 힘이 빠지고 머리는 누가 돌멩이로 쳐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댕댕 울렸다. 사자는 자신의 머리가 꼭 새해에 치는 제야의 종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건 덕화가 입을 뗄 때마다 더 심해졌다. 사자는 제 뒤를 따라붙으며 진짜 괜찮아요? 하고 거듭 묻는 덕화를 향해 성가신 어투를 감추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됐다니까.”



 저를 걱정해서 한 말일 텐데 사납게 반응하는 것이 스스로도 마음이 편치 않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덕화를 향해 힐긋 고개를 돌렸을 때 저를 바라보고 있는 신과도 시선이 마주쳤지만, 그의 눈에 드러난 못마땅한 기색 같은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갔다 오겠다는 인사도 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홀로 사자를 배웅한 덕화가 신이 앉아있는 식탁 앞으로 쪼르르 달려오며 말했다.



 “끝방 삼촌 진짜 어디 아픈 것 같은데? 저승사자도 아프고 그러나?”



 신기하다는 듯 말하던 덕화의 주의는 금방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끝방 삼촌 거는 나중에 먹으라고 해야겠다며 따로 챙긴 덕화가 자신의 음식을 펼쳤다. 신은 그런 덕화를 앞에 두고 아직 다 비우지 않은 제 접시를 밀어내며 일어섰다. 덕화의 시선이 그를 따라 올라왔다.



 “어디 가?”

 “가볼 데가 있어서.”

 “밥 먹다가 갑자기?” 



 신은 덕화의 물음에 대답을 하는 것 대신 곧장 방으로 들어가 겉옷을 챙겨 나왔다. 그리고 사자가 나갔던 문을 통해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대체 이 집 식구들은 왜 내 질문에 대답을 안 해줄까? 그치, 신시야?"



 익숙한 것을 새삼스럽게 한탄하며 덕화는 신의 몫으로 사왔던 메뉴도 따로 챙겨두었다.











 “제발요, 저승사자님! 저 이대로 못 죽습니다!”



 사자는 제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흔들어대는 남자 때문에 골이 울렸다. 그건 골치가 아프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 아니라, 정말로 골이 울리는 거였다. 그가 자신을 흔들 때마다 두개골 안에서 뇌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다듬고 평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입을 뗐다.



 “조배용 씨. 이대로 못 죽는 게 아니라, 이미 사망한 겁니다.”



 사자의 여지없는 대답에 지금껏 비굴하게 일그러져있던 남자의 얼굴이 변했다. 그의 뒤에서 피를 토한 채 쓰러진 제 육신만큼이나 벌겋게 변한 얼굴로 눈을 빛냈다. 사자는 일이 피곤해짐을 느꼈다. 천성이 저속한 자는 이승을 등질 때마저 이렇다. 어차피 저를 따라가게 될 것을 괜한 힘을 빼는 거였다. 이승에서도 부질없는 곳에 힘을 빼며 살았던 자들은 왜 끝막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이런 식인 걸까.


 사자는 어금니를 짓씹으며 저를 향해 달려드는 망자의 주먹질을 피했다. 남자는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한 새 제 뒤로 돌아가 있는 사자를 보곤 분한 듯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둘렀지만 사자의 몸에 가 닿지는 못했다. 그의 눈에 핏물이 고인 것처럼 실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사자는 메마른 눈으로 그 붉은 시선을 응시했다.



 “조배용. 당신의 손에 죽은 자 57명. 당신의 손에 죽지는 않았으나 당신으로 인해 죽은 자 289명. 당신의 손에 누군가 죽음으로 인해 죽어야 했던 자 166명. 반면 당신의 죽음으로 인해 사는 자 1028명. 당신의 죽음으로 인해 사는 자가 살리는 자 18603명. 또 그들이 살려내는 자-”

 “무, 무슨 소리야!”



 제 말을 막는 남자를 향해 사자가 노골적으로 성난 눈을 빛냈다.



 “경고해두는데, 저승사자의 말은 자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차디찬 눈빛과 그보다 더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남자는 입매를 일그러뜨리면서도 더는 말을 꺼내지 못 했다. 사자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누군가의 죽음이란 그런 거지. 한 사람의 삶과 죽음으로 인해 누군가 죽기도, 살기도 한다. 당신의 삶에는 512명의 죽음이 있었고, 당신의 죽음에는 19631명 이상의 생명이 깃든다. 그럼 이제 대답해보라. 네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너로 인해 죽고 살 그 생명들보다 무거운가.”



 남자의 눈에서 마침내 핏물이 흘렀다. 이승에선 그걸 피눈물이라고 했다. 그건 사무치는 반성의 의미가 아니었다. 저승의 문턱에서 참회하는 자들의 눈물은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고 투명하다. 그들의 생에서 단 한번도 흘리지 못한 맑은 눈물. 사자는 아직도 그 눈물의 투명함을 알지 못하는 남자를 향해 혀를 찼다.



 “이래도 네가 죽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남자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물론 아무리 많은 시간을 줘도 그 이유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찾을 수 없는 이유였다. 삶에 이유란 없다. 삶에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자들이야말로 그 순간 죽음에 가장 가깝게 걷는 이들이다. 남자는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의 입에서 흉포한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욕도 아니고 말도 아닌, 그의 마음 속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본성 그 자체였다. 그의 본성이란 저렇게 알아듣지 못할 광기로구나.


 사자는 더는 일이 늘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제게 달려드는 남자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공중으로 떠오른 남자가 벌건 눈으로 사자를 내려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터질듯한 눈을 보고 있으니 머리가 더 아파왔다. 사자는 새액새액 뜨거운 숨이 섞이는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더는 피곤한 일 만들지 말자고.”



 그건 그 자신을 위한 바람이기도 했다. 오늘 하루가 유난히 길었던 사자의 컨디션은 이제 거의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인적 드문 산 속에서 밤바람까지 맞고 있으니 그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순순히 제 발로 따라 나설 마음이 없는지 끝까지 애면글면 발버둥을 치는 남자를 조용히 제압하는 것 정도야 평소라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사자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것. 그게 문제였다.


 몸 상태가 좋지 못할 때엔 힘을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사자는 남자의 목을 틀어 쥔 손에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살짝 힘을 푼다는 것이 그만 아예 놓쳐버렸다. 사자의 손에서 순식간에 떨어져 나간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달아났다. 남자는 이미 제 영혼의 가벼움을 터득했는지 달리기가 아니라 순간 이동으로 텅, 텅, 거리를 넓히며 사라졌다. 사자가 그 뒤를 따를 때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모습을 감췄다. 몸이 평소보다 무겁고 둔했다. 그게 망자가 달아나는 앞을 가로막지 못하고 뒤만 쫓는 이유였다. 이러다간 놓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자의 머리를 어지럽혔고 눈앞이 다 캄캄해졌다.


 그때 쾅, 하고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사자의 눈앞에서 푸른 불꽃이 일었다. 사자가 빠르게 이동하던 발을 멈추고 자리에 서자 불꽃 뒤로 익숙한 인영이 드러났다. 한 손에 남자의 멱살을 움켜쥔 채 어두컴컴한 숲 길 사이를 걸어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도깨비가 맞았다.


 신은 얼굴이 또렷하게 보일 만큼 거리를 좁힌 후에야 제 손에 잡힌 남자를 사자의 앞으로 휙 던졌다. 남자가 쭈욱 미끄러져 사자의 발부리에 부딪히기 직전 멈췄다. 그의 목에 붉다 못해 검기까지 한 손자국이 선명했다. 사자는 얼마 전 사내 메일로 돌았다던 망자의 인권 침해 항목에 대해 떠올렸다. 메일을 확인하지 못하고 후배 차사를 통해 대충 전해 들은 거라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신체에 가한 폭력에 대해서도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항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일이 복잡해졌다. 사자가 한숨을 쉬며 쓰러진 남자를 내려보는데 그 앞에서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뭘 알았다는 걸까. 사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신을 바라보며 뭐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의 발 앞에 쓰러진 망자가 끙끙 신음을 내며 몸을 바르작거렸기 때문에. 사자와 신의 눈이 동시에 남자를 향했고, 먼저 입을 연 건 신이었다.



 “웬만하면 저 자를 그냥 따라가는 게 좋을 거야. 난 저 자와 달리 저승의 원칙 그런 건 잘 따르지 않는 편이거든. 내가 나서면 아마 좀 아플 텐데, 고통을 맛보고 싶다면 한번 참아 보든지.”



 신이 금방이라도 남자를 향할 듯 움직이는 것에 남자가 뒷걸음질을 쳤다. 사자는 그걸 보다 못해 그 앞을 막아 섰다.



 “너 뭐야. 갑자기 튀어 나와서는.”

 “내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거든. 넌 부를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내가 오는 수밖에."

 “나 300년 동안 이 일 했어. 네가 안 나서도-”

 “안 나섰으면 놓쳤겠던데.”



 물론 사자의 상태를 봐선 어렵게 잡긴 했을 거다. 그래도 놓치진 않았을 거라고. 이 정도의 망자쯤은 금방 잡을 수 있다고. 사자가 그렇게 반박하려는데 신이 눈썹 사이를 좁히며 말을 이었다.



 “이런 순간엔 그냥 좀 평범하게 괜찮냐, 고맙다, 이런 대화 좀 하면 안 되냐?”



 사자와 도깨비가 망자를 앞에 두고 있는 게 그다지 평범한 순간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이런 순간에 평범한 대화가 오가는 것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사자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신의 표정이 그 말을 받아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고맙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된 것도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고, 고맙다고 말하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였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서 싫기도 했다. 결국 망자를 데리고 그냥 돌아서는 사자의 뒷모습에 신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저 고집. 그 목소리가 사자의 뒤통수를 향해 꽂혔지만 그는 그것 역시 무시했다.











 사자를 골치 아프게 했던 망자는 망각의 찻집에서 무사히 저승으로 들어섰다. 물론 그에게 차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저승의 문을 열었을 때에야 제 처지가 실감났는지 이제 자신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사자는 당신의 손에 의해 죽어간 이들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답했다. 덜 괴롭고 싶다면 그들이 당신을 많이 원망하지는 않았기를 바라라는 말도. 남자는 들어왔던 문을 열자마자 그 안으로 거의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찻집 문을 닫음과 동시에 집으로 돌아온 사자는 집안의 온기를 느끼자 긴장이 탁 풀리는 걸 느꼈다. 이대로 쓰러져 내일 모레 아침에 일어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몸과 머리가 다 무거웠다. 그럼에도 사자는 곧장 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서 문득 발을 멈췄다. 찻집에서부터 말없이 제 뒤를 따라오고 있는 도깨비 때문이었다. 혹시 아직도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저러나. 사자가 지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저를 바라보고 있는 도깨비가 있었다.



 “그래. 고맙다고 쳐. 됐어?”



 고마움을 표하는 것 치곤 다소 불성실한 말투였으나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제 방으로 향하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도깨비가 그 앞을 막았다. 사자가 그를 피해 방으로 들어서려 하자 그에 맞춰 요리조리 몸을 움직였다. 가뜩이나 머리가 어지러운데 신이 눈 앞에서 이리저리 정신 사납게 구니 아예 시야가 팽글팽글 도는 것 같았다. 인내심이 끊긴 사자가 소리라도 지르려고 입을 떼는 순간, 신의 손이 그의 손목을 턱 붙잡았다. 방심하는 사이 아무런 방어도 못하고 손목이 잡힌 사자의 모습에 신이 중얼거렸다.



 “상태가 안 좋긴 하네. 피하지도 못하는 거 보니.”

 “뭐 하는 거야.”



 사자가 손을 털어내려 하자 신이 그를 제 앞으로 쑤욱 끌어 당기며 말했다.



 “도깨비는 스킨십을 좋아하거든. 너도 익숙해지든가.”



 사자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 신이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느닷없이 싱그럽기까지 한 미소라 사자가 얼이 빠진 사이 이번엔 그의 손바닥이 사자의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피할 새도 없이 그의 볼, 뒤이어 이마까지. 신의 뜨거운 손이 사자의 이마에 머물렀다. 신은 사자의 이마에 손을 얹은 그대로 그와 눈을 맞췄다.



 “열 나네.”



 나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사자는 열이 난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원래 열이 나고 있었는지, 그의 말 뒤로 열이 나기 시작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몸이 불타는 것처럼 열이 난다는 건 확실했다. 제 몸에 닿은 도깨비의 손이 더 뜨거운 것 같기도 했다.



 “얼굴도 빨갛고.”



 사자가 그를 밀어내지도, 말을 뱉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선 것을 본 신이 그의 이마를 감쌌던 손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너 아프다고, 멍청아.”



 괜찮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되도록이면 거들먹거리는 모습으로 태평하게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쩐지 사자의 입에선 헛바람 한줄기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신의 입에서 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몸 안에 잠겨있던 아픔들이 갑자기 온 몸을 두들기는 것처럼 밀려왔다. 그때까지 분명 참을만하다고 느꼈던 끔찍한 어지러움이 거의 구토 증상처럼 그의 속을 휘저었다. 꼭 우는 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하면 더 울음이 터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왠지 한없이 기대고 싶은. 그래도 될 것 같은.


 사자는 아픔에 취한 건지 도깨비에게 홀린 건지 그의 손에 이끌려 휘청휘청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사자를 침대에 대충 앉혀두고 잠시 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긴 뒤 사라졌다.


 사자는 그의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고만 있었다. 대충 겉옷만 벗은 채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움츠렸다. 침대 옆 서랍에 어젯밤 먹었던 약이 있을 테다. 사자는 집에 올 때까지만 해도 씻고 나와 그 약을 먹고 한 숨 푹 잘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 수 없었다. 신의 말대로 자신이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기억 조작은 도깨비의 능력이기도 한 건가. 나는 그가 멍청이라고 해서 정말 멍청이가 돼버린 게 아닐까.


 사자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신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고 똑똑 노크를 하는 것에 사자가 베개 위에서 살짝 머리만 떼어내 그를 바라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방으로 들어서는 신이 ‘아직 안 잤네’라고 한 걸 보니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침대 곁으로 다가온 신의 한 손에 얼음 주머니가 있었고, 반대쪽 손엔 약 봉투와 물 컵이 함께 들려있었다. 그는 얼음 주머니를 서랍장 위에 올려두고 먼저 약 봉투부터 열었다. 작은 종이 봉투에 담긴 몇 알의 약을 손바닥에 털어내 사자의 앞에 내미는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신은 누워있는 사자의 상체를 살짝 붙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약이야. 넌 여기 신분증 없어서 병원도 못 갈 거 아냐. 열 나고 기침 나고 으슬으슬 춥고. 증상 그거 맞지? 내가 대충 지어왔으니까 일단 이거라도 먹어.”



 사자는 신의 말을 해석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다. 들리는 말의 의미는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그 행간에 감춰진 사실들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 약은 신이 병원에 가서 지어온 것이고, 그 병원을 향한 것은 자신 때문이고, 고로 이 약은 아픈 자신을 위해 신이 병원에서 직접 지어왔다는 건가. 사자가 마침내 그걸 해석해내고 신을 바라보자 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너무 감동이었나?”



 이런 순간에도 빠지지 않는 능글맞음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마음이 편했는지도 모른다. 사자는 감동은 이쯤하고 약부터 먹으라며 저를 재촉하는 신의 말에 못 이기는 척 약을 넘겨 받았다. 단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고 그가 들고 온 물을 한 모금 넘겼다.


 사자가 약을 넘기고 나자 신은 그를 도로 침대 위에 눕히곤 이번엔 얼음 주머니를 들었다. 뜨끈뜨끈하게 데워진 사자의 이마에 차가운 얼음 주머니가 닿았다. 사자는 그러고 있으니 자신이 정말 병자라도 된 것 같았다. 이런 건 너무 유난인 거 아닌가 싶어 됐다며 신의 손을 붙잡아 내리려 했다. 신이 그 손을 가로막지만 않았다면.



 “손만 닿으면 벌레라도 만진 듯이 피하더니 이럴 땐 잘만 잡네.”



 사자는 그 말을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어 신이 하는 대로 가만 뒀다. 신은 그제야 얼음 주머니를 온전히 사자의 이마 위에 얹을 수 있게 됐다. 사자의 작은 머리통에서 자꾸 주머니가 떨어지려는 탓에 신은 그것을 손에 쥔 그대로 가만히 고정했다. 자신의 체온에 얼음이 녹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주머니 끝만 붙잡은 채.


 얼음 덕에 이마의 열은 조금씩 식어갔지만, 사자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내내 그를 괴롭히던 신열의 문제는 다른 곳에서부터 오는 거였다. 이런 감기 때문이 아니었고, 이런 얼음 주머니 따위로 내려지지 않는 열기.


 사자는 이불 속에 감춰진 제 심장을 손바닥 안으로 꽉 그러쥐듯 주먹을 쥐었다. 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해도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그와 언뜻언뜻 시선이 마주쳤고, 그건 점점 커지는 심장 박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심장 소리가 너무 컸다. 갈비뼈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사자는 눈을 질끈 감고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신의 눈이라도 피하자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불 밖으로 신의 음성이 단호히 울렸다.



 “하지 마.”



 뭘 하지 말란 건지. 내가 너 보면서 심장 뛰는 거? 그건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고. 사자가 입 밖으로 뱉지 못할 말을 속으로 뇌까렸다.


 사자의 것이 아닌 한숨 소리가 이불을 뚫고 들려왔다. 곧이어 사자의 얼굴을 덮고 있던 이불이 억지로 끌어내려졌다. 신이 사자와 실랑이를 벌이듯 끌어내린 이불을 꽉 쥔 채 말했다.



 “그렇게 이불 덮어쓰고 있으면 계속 열 오른다고.”



 신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사자의 붉게 달아오른 양 볼을 보며 말했다.



 “이봐. 또 얼굴 빨개졌잖아.”



 사자가 움직인 탓에 흐트러진 얼음 주머니를 신이 제대로 붙잡아 다시 이마 정중앙에 두었다. 그 와중에 또 눈이 마주쳤고, 사자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 열기에 어쩌면 잠시 정신을 잃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눈을 뜨고도 정신은 잃을 수 있으니까. 분명 정신이 잠시 그의 안을 떠난 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자는 제 안을 떠돌던 말을 뜨거운 숨과 함께 되는 대로 주워섬길 수는 없었을 거다.



 “열 때문 아냐.”



 사자는 멋대로 열린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멈춰야 했다. 무슨 말이냐는 듯 저를 보는 신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사자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번 열린 입은 말을 듣질 않았다.



 “심장 때문이야.”

 “뭐라고?”

 “널 보면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제 정신으론 절대로 못할 말이었다.



 “이가 안 맞는 톱니바퀴처럼 덜그덕거린다고. 심장이 그렇게 뛰면 피가 빠르게 돌고, 피가 빠르게 돌면 열이 나고.”



 이쯤되니 아까 신이 준 그 약에 이상한 성분이 포함돼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런 의심이 들만큼 제 입을 통해 튀어나오는 말이라는 것이 낯 뜨겁기 그지없었다.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얼굴도 뜨거워지고….”



 신은 이렇다 할 반응이라는 걸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깜빡거리는 눈꺼풀이 아니었으면 정말 조각이라도 돼버린 거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사자는 말끝을 흐리며 되는 대로 더 지껄였다. 너한테 뭘 어떻게 해달라는 소리는 아니다, 열이 나면 식히면 되는 거고, 심장이 뛰면 가라앉히면 되는 거고, 뭐 간단한 일 아니냐. 그런 말을 대수롭지 않은 걸 얘기하듯 떠들다가 물끄러미 저를 보는 신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넌 당분간 되도록이면 나한테 가까이에 오지 말라는, 그런 소리야, 내 말은.”



 사자의 말을 듣기만 하던 신이 느릿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때까지 사자의 이마 위에 얹어진 얼음 주머니를 붙잡고 있던 손이 내려갔다. 이제 이런 것도 해주기 싫다 이건가. 징그러운가. 자책에 빠지려는 사자를 신의 목소리가 끄집어 올렸다.



 “되도록 가까이 오지 말라는 그것도 계약 사항엔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이것도 기본이고 예의야?”



 말 같지도 않은 주절거림을 받아낸 신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오히려 붕붕 들뜨는 것은 말을 꺼낼 때마다 끝이 갈라지는 사자의 목소리였다.



 “계약 사항은 아냐. 기본이나 예의도 아니지만, 그냥… 권고 사항이야.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좋을 것 같다는 건 누구한테?”

 “너나, 나나….”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하여간 둘 다에게 그게 좋을 것 같다는 의미였다. 헌데 그 말을 들은 신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굳어졌다. 사자가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였을 때보다 더 심각한 얼굴이었다. 사자는 일단 이 상황을 수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마도 신의 머릿속에서 커져 가고 있을 생각과 의문을 종식시키기 위한 말을 꺼냈다.



 “그냥 내가 그렇다는 거야. 무슨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내 심장이 이상하다고. 그뿐이야. 그러니까 오해는 하지마.”

 “오해?”

 “그래, 오해.”

 “무슨 오해?”

 “뭐든 네가 지금 하는 그 오해.”



 사자를 빤히 보는 저 무표정 뒤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만했다. 고백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흘려 듣기엔 다소 께름칙한 말을 들은 신은 머릿속으로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고 있을 거다. 제 눈앞의 저승사자가 약을 먹고 헤까닥 돌아버린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선택지에 두겠지. 아픈 애의 멱살을 잡을지, 아니면 아픈 거라도 낫고 멱살을 잡을지 고민할지도 모르고. 몸이 괜찮아지면 계약서고 뭐고 불태워서 내보내야겠다는 생각까지 뻗쳤을지도.


 정말 약기운 때문인지 사자의 사고는 되는 대로 뻗어 나갔고,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신이 제 목을 틀어 쥐고 흔드는 상상까지 하던 사자는 여전히 자신을 보며 말이 없는 신을 향해 바락 소리를 질렀다.



 “아, 좀 하지 말라고!”

 “내가 뭘 했는데.”

 “오해하고 있잖아!”

 “내 생각 들렸어?”

 “안 들려도 그 얼굴 보면 다 알겠으니까, 그만 생각해!”



 사자의 말도 안 되는 신경질에도 신의 목소리는 차분히 낮기만 했다.



 “아닐걸.”

 “뭐?

 “너는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절대로 모를 걸.”



 그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데. 사자가 그렇게 묻기도 전에 신이 마치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듯 후욱 상체를 숙였다. 누워있는 사자의 위로 신의 상체가 거의 덮쳐지듯 내려앉았다. 덕분에 사자의 얼굴 위로 그늘이 졌다. 조명을 등진 채 보이는 신의 얼굴은 그보다 좀 더 어두웠다. 사자는 간신히 그의 눈 코 입만 확인할 수 있는 지경이었다. 이 행동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사자가 입을 열었다.



 “뭐, 뭐 하는 거야.”

 “확인.”



 물음에 대한 답이라고 하기엔 더 아리송했다. 대체 뭘 확인하는 거냐고 다시 묻는 사자의 어깨에 신의 손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꽉 감싸 쥐듯 끌어당겼다. 신은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사자의 눈을 보며 그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낮고, 부드럽고, 한편으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이 뛰는지 안 뛰는지.”



 그리고 그걸 정말 제가 확인하고 말겠다는 듯 사자의 위로 신의 얼굴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은 어느새 사자의 목선을 타고 올라와 그의 턱 끝을 쥐었다. 잡힌 얼굴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기엔, 사자는 자신이 아예 그를 밀어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정도의 거리라면 신도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대는 걸 분명 느꼈을 것이다. 사자는 베개를 최대한 눌러 고개를 뒤로 빼며 제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붙잡고 소리쳤다.



 “그래! 뛰, 뛰어! 뛴다고! 그러니까 좀 떨어져, 이 도깨비야!”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 제 볼을 감싼 그의 손가락 하나 밀어내지 못한 사자가 거의 절망적인 눈으로 신을 바라봤다. 이대로 있다간 신이 떨어지고 말고를 떠나 사자가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입이라도 맞출 것 같았다. 그때 신이 뜻밖의 말을 했다.



 “틀렸어.”

 “무슨-”

 “네 심장이 아니라 내 심장 확인하는 거야.”



 사자는 말을 마친 신의 입술이 제 입술 위로 내려앉았을 때에야 그가 확인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고, 그 방법 또한 알았다. 부드럽게 맞닿은 입술이 뜨거운 게 자신의 열 때문인지, 신의 체온 때문인지 구분이 안 갔다. 누구의 것이든 그 열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사자의 볼을 한 손에 감싼 신의 손가락이 그의 턱 선을 매만지듯 훑어 내려갔다. 그 손길에 사자는 저도 모르게 입술이 열리는 걸 느꼈고, 그 사이로 서로의 숨결이 오갔다. 무언가 더 기대하게 됐던 그 다음 순간 신의 입술이 아쉽게 떨어졌다. 아쉽게. 사자는 분명 ‘아쉽게’라고 생각했다.



 “…뛰네.”



 입술을 뗀 신에게서 짧은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뛴다니. 그건 사자의 심장을 말하는 걸까, 신의 심장을 말하는 걸까. 사자는 그가 주어를 똑바로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입을 통해 나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



 “너 감기 옮을 거야.”



 그때까지 사자의 얼굴 가까이에서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던 신의 눈가가 휘었다. 신은 사자의 위에 바짝 붙어있던 상체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런 거 말고 다른 말을 해야 하는 순간 아냐?”



 물론 그러고 싶었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나처럼 너도 심장이 뛰었는지. 심장이 뛰었다면 이제 이 뒤는 어떻게 할 건지. 이 입맞춤의 의미는 무엇인지. 내가 싫지는 않은지. 날 좋아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나는 너를 좋아하는 건지.


 수많은 말들이 그의 머리에서 먼지처럼 뒤엉켜 부유했다. 개중에 쓸만한 말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이런 감정의 교류 같은 걸 겪어본 적 없는 사자에겐 너무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래서 사자는 의도치 않게 또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말을 뱉고 말았다.



 “나 도깨비 신부 아냐.”



 이번엔 말해놓고 저 스스로도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굳은 신의 눈을 마주하자 대단히 잘못된 말을 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것 같았다.



 “그 말도 실망스럽기 그지 없네.”



 신은 좀 전과 마찬가지로 허탈한 듯 픽 웃는 얼굴이었지만, 묘하게도 눈은 웃지 않았다.



 “할 말은 그게 끝?”



 재차 확인하듯 다시 묻는 신의 말에 사자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긍정의 뜻도 아니고, 대답하기 싫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입을 여는 자신의 입에서 또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러고 나면 정말 그 분위기를 수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신은 사자의 얼굴을 감쌌던 그 큰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입만 열면 헛소리를 하는 사자에 대한 답답함이 담겨있는 듯한 동작이었다. 그 행동을 덧없이 보고만 있는 사자를 향해 신이 다시 눈을 맞췄다.



 “내 상상 이상으로 멍청이라 당황스럽긴 해.”



 불과 몇 시간 사이 멍청이라는 소리를 벌써 두 번이나 들었으나 사자는 광분할 기운도 없었다. 사실 스스로도 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억울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만 하면 다 해결될 일을 이렇게 돌아가네.”



 그래서 그 한마디가 뭔데. 속으로 생각하는 사자의 말을 신이 듣기라도 한 듯 말을 이었다.



 “그건 안 알려줘. 네가 찾아.”



 신은 정말로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버렸다. 신이 앉아있던 무게가 사라지자 침대가 울렁거렸다. 사자는 제 속에서 일렁이는 파도가 꼭 침대 때문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누워있는 사자를 내려다보는 신의 시선이 다소 무거웠다. 방금 입을 맞췄던 사이가 맞긴 한가 싶은 눈길이었다.



 “자라.”



 신이 짧은 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방 문을 여는 그를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이불을 뒤집어 썼다. 그러자 아직 문을 나서지 않은 신의 목소리가 핀잔처럼 들려왔다



 “그거 하지 말라니까.”



 남이사. 밑도 끝도 없는 볼멘소리가 사자의 속에서 울렸지만, 그는 긴 숨과 함께 문을 닫고 사라진 신의 걸음 소리를 확인하자마자 스르르 이불을 내렸다.


 저 나름의 첫키스였는데 그 뒤에 혼자 남은 기분이 이상했다. 로맨틱이나 낭만은 바라지도 않고, 생각도 안 했다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사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디에 원망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분위기의 절반은 제 탓인 것 같았으니까. 사실 절반보다 조금 더 많이.


 그는 아직 제 몸을 묶은 감기 기운과 찜찜한 첫키스로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도, 여전히 제 심장은 뛰고 있다는 사실이 속없이 느껴졌다. 주인의 마음과 상관없이 지나치게 솔직한 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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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비사자가 드디어 키쮸를 했다 세상에 정말이지 감격 8ㅅ8... 하지만 키스를 한 이후에도 삽질을 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 아니죠...끄덕

*내일부터 바쁜 일이 생겨서 앞으로 글을 올리는 텀이 더 길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오늘 안에 올린 게 넘나 다행...

적어도 다음주 이후에 올라오지 않을까 싶은데,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다면 너무 죄송하고 감사하고..(__)

*저는 칭찬을 익숙하게 받지 못하는 촌스러운 사람이라 달아주시는 댓글이 그저 수줍고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좋은 말들 감사하고 힘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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