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터에서 도깨비를 쫓아낼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화이팅.’



 그로부터 딱 일주일이었다. 난데없는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동거(사자는 친근한 사연이라도 있을 것 같은 이 단어를 정말 쓰고 싶지 않았지만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가 시작된 지 정확히 일주일 후에 사자가 다시 계약서를 내밀었다. 얇은 종잇장이 긴 식탁 가운데를 휘잉 가로질렀다. 그리곤 때마침 식사를 끝낸 도깨비가 나란히 내려놓은 포크와 나이프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걸 본 도깨비의 길게 뻗은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아직 식사를 다 끝내지 않은 사자는 여전히 심상한 얼굴로 포크를 놀렸다. 콕. 포크에 찍힌 샐러리가 꽤 싱싱한 소리를 냈다. 사자가 딱 한입거리로 잘린 그것을 입안으로 넣기 직전, 신의 앞에 놓여있던 종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화르륵 불이 붙은 것이 그와 동시였는지, 그 전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쨌건 재가 되어 사라졌다는 것은 확실했다. 사자는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그의 손이 닿은 식탁 위로 서릿발이 맺혔다.



 ‘저번에도 그렇고 아무래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주겠는데. 계약서 같은 걸 그렇게 함부로 태워버리면 법적 절차라는 걸 받게 되는 거야. 나이 헛먹은 도깨비.’



 침착하게 가라앉은 음성 뒤로 까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섞였다. 도깨비는 그런 사자를 향해 오히려 빙글 웃어 보였다. 천진하게 턱을 들어 올리며 아이처럼 웃는 얼굴 위엔 이상하게도 서늘한 예리함 있었다.



 ‘나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주자면, 도깨비터에서 도깨비를 쫓아내고 싶을 때엔 계약서나 법적 절차가 아니라 다른 걸 각오해야 할 거야. 순진한 저승사자.”



 꿈틀. 사자의 눈썹 위로 일순 파도가 쳤다. 순진? 내가 300년을 이 땅에서 살았는데 저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해? 사자의 발끈에 식탁 위에 얌전히 내려앉아 있던 포크가 날을 빛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형형한 기세와 달리 졸지에 포크 끝에서 자리를 잃은 샐러리가 눈치 없이 그 주위를 둥실 맴돌았다. 그 장면을 본 도깨비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흥분도 잘하네.’

 ‘대체 누가 어리다고-’

 ‘억울하면 900년 살고 오든가.’



 저걸 진짜. 나이 많이 잡숴 좋겠다는 말이 목구멍 안에서 튀어나와 입 천장을 탁탁 칠 정도였지만, 사자는 스르르 눈꺼풀을 내리 감으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저런 무개념 도깨비와 같은 수준으로 말을 섞어선 안 돼.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자. 사자는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썹 모양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싶을 때 다시 눈을 뜬 사자는 재킷 안쪽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내 들었다. 도깨비의 손끝에서 타버린 계약서와 같은 것이었다. 애초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있었던 거지만 사자는 마치 도깨비의 행동을 예측했었다는 듯 침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도깨비의 앞으로 날려 보내기 전, 이것마저 불태울 확률이 99프로일 것 같은 그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덕화가 사자와의 계약을 허위로 작성한 죄로 날 따라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이건 가만 놔둬야 할 거야.’



 분명하게 으름장을 놓은 후에야 사자의 손을 떠난 계약서가 다시 도깨비의 앞에 놓였다. 영 심기가 불편해진 도깨비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금방이라도 온 집안 세간살이를 박살 낼 듯한 분위기였다. 미동도 없이 굳게 입만 다물고 있는 모습에 사자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사람이 뭘 줬으면 제발 보는 척이라도 좀 해라.’



 이런 걸 일일이 가르쳐줘야 해? 진짜 나이 헛먹었어? 빈정거리는 사자의 말에 도깨비도 지지 않고 픽 웃어 보였다.



 ‘사람도 아닌 게.’



 빠직. 사자는 또 한번 제 마음의 평정에 금이 가는 소리를 들으며 푹 고개를 숙였다. 그는 더 이상 이 수준 낮은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 없는지 눈도 맞추지 않았다. 도깨비에게 그 계약서를 읽어보라는 말을 대신할 왼손만 힘없이 휘적휘적 휘저어 보였다. 물론 그마저도 귀찮다는 듯 몇 번 휘적거리다가 툭 떨어졌지만.


 이쯤되면 저승사자의 기권패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도깨비는 그 결과가 썩 마음에 드는지 그제야 사자가 내민 종이를 내려봤다. 맨 위에 잘 보이도록 ‘계약서’라고 쓴 걸 보니 역시 이 집에 대한 계약서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앞에 붙은 말이었다. 도깨비는 자신이 읽은 게 맞는지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한 후 고개를 들었다. 사자의 머리꼭지를 바라보는 눈이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동그란 모양으로 커져 있었다.



 ‘셰어하우스 주거 계약서?’



 기가 찼다. 셰어하우스라니. 이 집에 저승사자가 묵을 끝방 하나 내준 것도 황당한데 아예 셰어하우스 계약서를 쓰잔다. 내가 내 집에서 원치 않는 세입자를 받아들이며 계약서까지 써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뭔가. 셰어하우스라는 낯간지러운 이름까지 붙이며. 도깨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대체 이게 뭐냐고 계약서를 펄럭거렸다. 평정심을 회복한 사자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이번엔 도깨비가 평정을 찾지 못하고 콧김을 뿜었다.



 ‘아주 별 걸 다 한다, 다 해. 누가 너랑 하우스 셰어하고 싶대?’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네 잘난 조카, 아 그것도 친조카는 아니지. 아무튼 걔한테 속아 전세로 계약했다가 졸지에 끝방 신세 된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 아주 나가든가.’

 ‘부동산에서 계약서 찾아 법원으로 향할까 하다가 셰어하우스 정도로 퉁 쳐준 거야. 네 조카 감옥살이 안 시키는 걸 다행으로 여겨.’



 덕화의 얘기가 나오자 도깨비의 기세가 어쩔 수 없이 한 풀 꺾였다. 사자는 문득 도깨비는 가족을 만들지 않는다던 소문을 떠올렸다. 도깨비다운 소문이다 싶어 혀를 차곤 했었는데, 정작 제 앞에 앉은 도깨비의 실상은 가족만 없다 뿐이지, 제 주위가 얽히는 일엔 답지 않게 수그러들었다. 조카라는 이름의 철딱서니 없는 가신 녀석에게 네 이놈! 하고 매일같이 불호령을 해도, 물론 그게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해도, 어쨌든 신은 덕화에게 약했다. 아니. 덕화뿐인가. 그의 할아버지에게도, 또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얘기에도 약했다.


 사자는 언젠가 도깨비가 덕화의 할아버지라는 사람과 통화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전화기에 대고 몸은 괜찮은가, 하고 묻던 도깨비의 목소리가 너무 낯설어 소름이 끼쳤었다. 저 자가 저런 목소리도 낼 수 있었나 싶어서. 저렇게 염려가 뚝뚝 묻어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감도는 그런 목소리. 사자는 막상 도깨비답지 않은 실체를 확인한 후엔 그건 또 그것대로 한심해 혀를 차곤 했더랬다.


 사자는 도깨비가 덕화때문에라도 저 계약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깨비를 향해 사자가 말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당분간 이 집에 함께 살아야 하고. 그러려면 서로간에 규칙이라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규칙을 세우시겠다?’



 사자는 대답 없이 쌍꺼풀이 짙은 두 눈만 천천히 깜빡거렸다. 그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듯 하얗게 가라앉은 얼굴을 보고 있던 도깨비가 계약서를 촤르륵 펼쳐 보였다. 낱장인가 싶었던 종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르륵 이어져 있었다.



 ‘이렇게 많이?’



 1부터 번호를 매긴 계약 조항은 언뜻 봐도 두 세 장을 거뜬히 넘어가고 있었다. 신은 잠깐 들여다볼까 하다가 ‘서로의 식단에 터치하지 않기’따위의 유치한 항목을 보곤 기함을 하며 시선을 거뒀다.



 ‘뭘 이런 걸 계약까지 해?’

 ‘난 철저한 게 좋아.’

 ‘강박증이냐?’

 ‘아냐.’

 ‘그거 정신병이다, 너.’

 ‘아니라고.’



 확실히 정신병은 아니었다. 일종의 직업병이라면 또 모를까. 모든 일의 문서화는 단지 아주 깐깐하고 예민한 상사를 머리 위에 둔 채 300년을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긴 습관일 뿐이었다. 조금 피곤한 습관이긴 했지만 한번에 정리를 해두면 일을 마무리 지을 때 확실히 더 수월하긴 했다. 무엇보다 '이런 일'이라면 사자는 자신의 습관이 더욱 더 유용하게 쓰이리라고 믿었다.



 ‘그 중 하나라도 어기는 쪽이 이 집에서 나가는 거야.'



 도깨비터에서 도깨비를 내쫓는 '이런 일'.



 '안 나가겠다고 버틴다면… 그 이후는 뭐 저승의 순리대로.’



 말을 마친 사자의 얼굴 위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만연하게 퍼졌다.



 ‘그러니까, 나랑 계약을 하겠다고?’



 덕화야 그의 정체가 사자인 걸 몰랐고, 사자와의 계약이 뭘 의미하는 지도 몰랐겠지만 도깨비는 아니었다.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계약이라니. 저 저승사자는 그게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은 하고 이 계약서를 내민 건가.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걱정 마. 내가 그 계약을 어기고 이 집에서 나갈 일은 없을 것 같거든.’



 하. 단호한 사자의 말에 도깨비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눈으로 훑어지지도 않는 말도 안 되는 계약서를 내세워 이 집을 차지하겠다는 저의가 아주 노골적이었다. 그 수가 너무 빤해 귀엽기까지 했다. 아주 오독오독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어 보인 도깨비의 눈이 빠르게 계약서를 읽어 내려갔다. 저가 생각하기엔 치졸하고 졸렬하다 싶은 조항들이 몇 있었지만 굳이 문제 삼지는 않았다. 어디 한번 저 속 좁은 저승사자의 장단에 맞춰줘 볼까 싶어서.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은 도깨비가 다시 시선을 돌려 사자와 눈을 맞췄다. 보란 듯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린 그는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곧게 뻗은 긴 손가락이 허공을 향하자 그 움직임을 맞추듯 계약서 역시 그의 눈앞으로 떠올랐다. 촤라락. 도깨비의 손짓 한번에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계약서의 맨 뒷장이 펼쳐졌다. 도깨비는 계약서의 하단에 ‘날인’이라고 적힌 글자 위로 손가락을 갖다 댔다. 동시에 그의 손톱 아래에서 검붉은 피가 톡 터져 나와 종이 위로 스며들었다. 김신. 그의 이름 두 글자가 선명하게 붉은 색으로 새겨졌다. 계약서의 뒤로 비치는 붉은 색은 언뜻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혈서를 써. 진짜 누가 900년 산 도깨비 아니랄까 봐. 사자의 고개가 설레설레 흔들렸다. 눈가를 찌푸리며 탐탁잖게 바라보고 있는 그의 앞으로 신의 이름이 새겨진 계약서가 날아왔다. 



 ‘도깨비의 피로 성사된 계약이야. 아마, 꼭, 지켜져야, 할 거야.’



 음절마다 힘을 주며 얘기하는 신의 말에 계약서를 곱게 접어 재킷 안으로 감춰 넣은 저승사자가 다시 포크를 집어 들며 말했다.



 ‘너야말로 꼭 지켜야 할 거야. 아무리 도깨비라도 저승사자와의 계약을 허투루 여기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생각이거든, 내가.’



 저 윗분에게 올릴 서류까지 미리 준비해 놨다는 말은 아까 못 먹었던 샐러리와 함께 씹어 삼켰다. 아삭아삭. 그 상큼한 저작 소리와 달리 식탁 위는 냉기와 화기의 충돌로 살벌한 기운을 뿜어대는 저녁이었다.


 그리고 그게 벌써 한 달 전의 일이다.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계약은 다행스럽게도, 지나온 한 달 동안은 온전히 지켜지고 있는 듯 보였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계약 조건

 1. 서로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







 "어? 선배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튀어나온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사자는 푹 숙여져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검은 모자 챙 아래로 오며 가며 몇 번 만난 적이 있던 신입 후배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눈인사를 하며 반갑게 웃는 얼굴을 보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려던 사자의 발이 다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천진하게 묻는 후배의 물음에 사자는 하마터면 헛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저승사자를 병원에서 마주치는 게 뭐 얼마나 특별한 일이라고 저렇게나 해맑게 물을까. 너무 뻔한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하나 싶었으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배 녀석에겐 그것조차 새삼스러운 일인가보다. 사자는 '나도 선약이 있어서'라고 짧게 답하며 살짝 웃어 보였다. 그 대답을 들은 후배의 고개가 민망할 정도로 크게 끄덕거려지는 걸 보니 뒤늦게 저가 생각해도 뻔한 걸 물었구나 싶은 것 같았다.



 "저는 깜빡 두고 온 서류가 있어서 잠시 들렀습니다."



 후배는 멋쩍었는지 묻지도 않은 자신의 볼일까지 소상히 밝혔다. 망각의 차까지 먹여 올려 보낸 망자의 서류가 없어져 깜짝 놀랐다고. 여기서라도 찾아서 다행이라고. 그 말을 가만 듣고 있던 사자가 아직 일이 손에 익지 않은 후배를 향해 쯧 혀를 찼다. 신입 시절 자주 할 수 있는 실수 중 하나가 서류 누락이긴 했다.



 "아무리 정신 없어도 서류는 잘 챙기고 다녀. 그거 다시 받아서 올리려면 골치 아파진다, 너."

 "안 그래도 잃어버렸을 까봐 눈앞이 다 깜깜했습니다."



 찾아서 다행이라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얼굴이 퍽 귀엽기도 했다. 옛날 생각도 좀 나고. 사자는 잘했다 그래, 하며 시선을 내려 손목 시계를 바라봤다. 선약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나 이제 가봐야겠다. 수고해."

 "네! 수고하십시오!"



 씩씩하게도 답한다. 누가 보면 사자가 후배 녀석들을 세워 두고 푸닥거리라도 놓는 줄 알겠다 싶을 만큼 군기가 팍 잡힌 인사에 그는 휘휘 손을 저었다. 저승사자인 주제에 이승 문화는 왜들 그렇게 빠르게 습득하는지. 그리 편하지도 않은 군대식 인사를 오래 듣고 있는 것도 나름 고역이라 사자의 손이 빠르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제자리에 그대로 멈춰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단번에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서 12층 버튼을 누르고 머릿속으로 호실을 떠올렸다. 1203호였던가. 4호였던가. 아무래도 다시 확인해야 할 것 같아 손으로 코트 안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손끝에 걸리는 봉투를 꺼내려는 순간 '아차!'하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사자의 재킷 안에서 꺼내진 건 빈손 그대로였다. 이미 간 줄 알았던 후배 녀석의 고개가 엘리베이터 밖에서 빼꼼 튀어나와 있는 게 보였다.



 "선배님, 저 방금 도깨비 보고 온 거 아십니까?"



 사자의 몸이 굳었다. 잘못 들었나 싶었다. 뭐라고? 누굴 봤다고?



 "저는 도깨비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는데… 와. 잘생겼단 소문은 들었는데 진짜 그렇게 잘생겨도 될 일입니까? 키가 아주-"

 "미안. 나 좀 급해서 얼른 가봐야겠다."



 사자는 후배의 말을 툭 끊고는 급하게 닫힘 버튼을 눌렀다. 더 듣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사자가 아는 한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마주칠 수 있을만한 도깨비는 단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잘생기고 키가 큰 도깨비라는 말에 그게 김신이라는 것은 더욱 더 확실해졌다. 물론 그 사실을 그 오만방자한 도깨비 앞에서는 얘기해줄 생각이 없지만.


 이 도깨비 자식이 또 뭘 하려고 나타난 거야. 깜빡거리며 숫자가 바뀌는 엘리베이터의 계기판을 답답하게 바라보던 사자는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싶어 그대로 엘리베이터 문을 통과했다. 벽을 통과해 나오자 그의 구둣발이 단숨에 12층 복도에 닿았다. 그리곤 1203호인지 4호인지가 있을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적어도 사자가 알기론 이 병원에 도깨비와 연고가 닿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럴 인연을 만들지도 않거니와 하필 자신이 선약이 있는 날 그가 이 병원의 누군가를 만나러 왔다고 하는 건 좀 이상한 우연이다. 저와 도깨비 사이에 그런 순수한 우연은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사람의 일에 관여하기 좋아하는 마음 약한 도깨비가 하필 제 일을 망치러 온 거라면 또 모를까. 그런 거라면 아마 각오해야 할 거다. 사자의 책상 서랍에 도깨비의 피가 묻은 계약서가 아주 곱게 모셔져 있으니까.


 1203호와 1204호 사이에 멈춰 선 사자는 굳이 봉투를 꺼내 다시 정확한 호수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1203호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도깨비와 눈이 마주쳤으므로. 이미 멈춰 서 있던 사자의 다리가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금방 바닥을 뚫고 나갈 듯 힘이 들어가 있는 게 잔잔한 진동으로 느껴졌다. 홀연히 나타나 그런 사자를 보고 잠깐 굳은 듯 서 있던 도깨비는 아주 덤덤한 표정으로 아직 반쯤 열려있는 문을 마저 닫으며 말했다.



 "또 너냐."



 또. 너냐. 또. 또오? 또라고?


 신의 말을 들은 사자의 표정이 서늘해졌다. 성가시다는 듯한 얼굴로, 마치 사자가 도깨비의 뒤를 따라다니기라도 한 것처럼, 저가 하고 싶은 말을 천연하게도 내뱉는 도깨비의 모습에 사자는 주먹을 꽉 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이야말로 도깨비와 우를 범하는 일이 생길 것 같았으니까.



 “네가 왜 여기 있어.”

 “볼 일이 좀 있어서.”



 사자와 마주치고도 신은 그다지 놀라지 않아 보였다. 그 태도가 사자를 약 오르게 했다. 지금 명백하게 저승사자의 일을 침범해 놓고 저렇게 덤덤하시겠다 이거지. 앞날 무서운 줄 모르고. 사자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신이 등지고 선 병실 문 앞에 작게 붙은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분명 오늘 저와 함께 이 길을 나섰어야 할 중년의 여성은 환자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어떻게 봐도 오늘 자신이 대접할 망각의 차를 마실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16시 02분에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어야 할 병마가 옅어져 있었다. 그녀에게 없어야 할 내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 내일을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이 도깨비렷다.


 병실 안을 들여다보던 사자의 시선이 매섭게 도깨비를 향했다. 이런 일을 벌인 주제에 저렇게 태연자약한 얼굴을 하고 있어, 지금? 사자의 손가락이 페도라 끝을 툭 쳐 올렸다.



 “900년이나 산 주제에 공사 구분 못하는 부주의한 도깨비. 계약서 잊었어?”

 “아니. 아주 잘 기억하고 있는데, 왜.”

 “서로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 기억 안나?”

 “나는 내 일을 한 거야. 너야말로 내 일을 방해하지 말도록 해.”



 도깨비의 말을 들은 사자의 입이 딱 벌어졌다. 지금 누구한테 방해하지 말라는 거야? 사자는 도깨비의 일이 무엇인지 애초에 그걸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고, 또 앞으로도 쭈욱 그럴 생각이다. 그런데 누가 누굴 방해했다고? 지금 생사자를 잡아도 유분수지. 황당함에 사자가 뭐라 입을 떼려는 순간 그의 등 뒤로 불쑥 ‘안녕하십니까!’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선배님 선약 오셨어요?”



 장소가 장소인지라 어딘가에서 자꾸만 아는 얼굴들이 튀어나왔다. 사자는 얼굴만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후배의 인사에 대충 고개만 까딱거렸다. 도깨비와 저의 사이를 의문스럽게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시선은 사양하고 싶었다. 도깨비와 알고 지내는 저승사자. 그런 소문이 제 뒤에 붙는 건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사자는 도깨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후배 녀석의 등을 떠밀다시피 억지로 보내버리고는 다시 신을 바라봤다.



 “인간의 생사에 관여하는 게 네 일이야? 도깨비신부를 살린 이후로 아예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나 보지? 말만 해. 그 일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내가 위에다가 아예 정식 건의를 해줄 수도 있으니까."



 물론 위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내가 장담 못하고. 사자는 뒷말을 빼먹지 않고 붙였다. 어디 한번 노하신 그 분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으면 계속 내 일을 이렇게 방해해 보라지. 입술을 실룩거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사자의 모습에 신은 자신이 대체 왜 이런 소모적인 말싸움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한없이 귀찮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 시간에 못 온 게으른 저승사자. 난 인간의 생사에 관여 안 했어."

 “웃기지 마.”

 “어, 웃기라고 한 소리 아니야.”



 아. 진짜 대화 한심해. 말문이 막혀 잠시 할 말을 잃은 사자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나직하게 답했다.



 “나 망자와의 선약에 늦은 적 단 한번도 없고. 너는 저 여자의 생사에 관여 했어.”

 “말했지. 안 했다고.”



 신의 목소리가 꽤 날카로워졌다. 저를 향해 벼려진 날 선 목소리에 숙이고 있던 사자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왔다. 지금 화내야 할 게 누군데 되려 도깨비 놈이 저렇게 목소리를 세우나 싶었다. 뭐라 입을 열려는 순간 신이 그의 말을 막았다.



 “살려준 게 아니라 조금 더 살게 해줬을 뿐이야. 딱 일주일.”



 말을 마친 신은 사자가 병실 안을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몸을 비켜 섰다. 그 자연스러운 동작에 신의 얼굴을 노려보던 사자의 시선이 다시 병실 안으로 향했다. 신의 말대로 아주 살아났다고 하기엔 그녀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기침 같은 건 여전히 고달파 보였다. 그걸 확인한 사자의 눈동자가 다시 도깨비를 향했을 때엔 아까보다는 아주 조금 누그러진 눈빛이었다. 물론 붉은 입술 사이로 픽 새어 나오는 한심하다는 듯한 실소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지만.



 “네 일이라는 게 이거야? 일주일 더 연장된 삶?”

 “어. 신은 간절한 이들에게 때때로 기적을 주곤 해. 그게 내 일이야.”



 기적이라. 그런 걸 선물하는 게 일이라니. 신의 말을 곱씹던 사자의 입안이 까끌해졌다. 께름칙한 맛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비린 생선 내장이 입안에서 탁 터져버린 것처럼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는 침이 불쾌했다. 그는 괜한 헛기침을 하며 모자를 눌러 썼다. 검은 모자의 차양 안으로 그늘을 드리운 얼굴이 반쯤 사라졌다.



 “그래서 꼬여버린 내 일은 어떻게 할 건데?”

 “사유서 써서 올려. 도깨비 때문이라고.”



 엄청난 당당함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짜증이 났던 것도 같다.



 “그 정도는 네가 감당할 수 있다? 잘나셨네, 아주.”



 사자는 자신이 느끼기에도 제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는 심중이 뒤틀려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물론 귀찮은 일이긴 했다. 오늘 어그러진 일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고 다음 일정을 위해 다시 서류를 작성하고, 또 선약을 잡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 성가신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사자는 지금 제 안의 다른 부분이 건드려졌다는 걸 알았다. 어딘가에서부터 울컥 치밀어 오르는 역정이 단순히 오늘 일이 미뤄져서가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그건 마주 선 신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모자 아래로 감춰진 사자의 얼굴을 살피기 위해 살짝 고개를 비틀어 숙였다.



 “야, 너-”

 “됐어.”



 뭔가 심상치 않은 사자의 모습에 뭐라 말을 붙이려던 신의 목소리가 탁 잘렸다.



 “여기 나 아는 얼굴 많아. 그만 꺼져.”



 돌아서는 사자의 행동에 지체가 없었다. 뭐가 저렇게 급해? 아까처럼 아는 얼굴이 저를 알아보고 인사라도 해올까 봐 걱정돼서 그런다 하기엔 지나치게 쌀쌀했다. 물론 원래도 살갑지 않은 저승사자였고, 또 그들 사이에 쌓인 우정이라 해봤자 얄팍한 계약서의 두께, 그 종잇장에 버금가는 정도겠지만 저런 태도는 좀 이상했다. 감정의 높낮이가 없어 화가 났을 때도 고요한 편인 사자가 유난히 차갑게 돌아선 그 뒷모습이 신의 마음을 잡아챘다. 꺼지라는 사자의 말대로 그는 이대로 꺼지면 됐다. 그런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건 왜일까. 신은 비상구로 이어지는 출구의 문을 여는 사자의 파리한 등허리를 바라봤다. 저 등이 괜히 휑해 보인다면 자신은 정말 마음 약한 도깨비가 맞다. 그리고 그걸 딱히 부정할 생각도 없다.


 아, 정말 피곤하다. 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침내 걸음을 뗐다. 그의 발이 채 땅에 닿기도 전에 복도에 있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 깜짝…!”



 사자는 비상구의 문이 닫히자마자 눈앞에서 번쩍 튀어나온 도깨비의 모습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저승사자가 뭘 이런 걸로 놀라.”

 “넌 안 놀라냐, 이 도깨비야!”



 갑자기 튀어나오면 지도 놀라면서. 놀란 심장을 쓸어 내리며 꿍얼거리는 사자의 앞으로 도깨비의 발이 성큼 다가섰다. 애초에 멀지 않게 있던 그가 갑자기 가깝게 다가오자 움츠려있던 사자의 어깨가 다시 한번 움찔 떨렸다. 마주친 도깨비의 시선이 굳어있어 더 그렇기도 했다. 저런 얼굴로 저런 표정 짓는 건 솔직히 반칙이다. 사자는 자신이 저승사자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저 험악한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이미 진작 명줄이 끊어졌겠다 싶었다.



 “신성한 병원에서 소란 떨지 말자.”



 사자가 싸우기라도 할 기세로 흉흉하게 다가오는 신에게 지금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장소를 상기시켰다. 신은 그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여기가 뭐가 신성해. 맨날 사람 죽어나가는 곳이.”

 “그러니까. 맨날 사람 죽어나가는 여기가 내 평생직장이나 다름 없거든. 그러니까 싸움을 걸려면-”

 “누가 싸우재?”

 “그럼 뭐. 왜. 뭐.”



 신은 턱을 치켜드는 사자의 당당한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둘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이 어색한 건 사자 뿐이라는 듯 신은 한참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실 그들이 함께 있을 때에도 자주 대화를 나누는 편인 건 아니었다. 집에 있을 때엔 대체로 각자 다른 볼 일을 보고 어쩌다 말을 섞을 때엔 으르렁 이를 세우는 게 다반사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요즘엔 그것마저 피곤해져 서로 말도 없이, 크게 부딪히는 일도 없이 지내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그들을 에워싼 정적이 불편해진 건 부쩍 가깝게 다가온 저 도깨비의 얼굴 때문일까.


 도깨비의 열기를 담은 뜨거운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의 거리였다. 그리고 코앞에서 쌍꺼풀이 지지 않은 긴 눈이 깜빡이지도 않은 채 사자를 향하고 있었다. 사자는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듯했다. 누구와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이에게 손이 닿으면 전생이 보인다는 달갑지 않은 능력 탓이긴 했지만, 이제는 그게 버릇이 되어 누군가와 거리를 좁힌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그런데 이 도깨비는 뭔데 이러는 거야.



 “비켜.”

 “안 물어봐?”

 “뭘.”

 “내가 저 여자의 죽음을 왜 미뤘는지. 그걸 알아야 위에 보고도 올릴 거 아냐.”



 그런 말을 꼭 이렇게, 이런 거리에서, 이런 자세로 해야 하는 걸까. 사자는 자신의 등 뒤에 맞닿은 차가운 철문과 그 앞을 가로막듯 서 있는 신의 눈을 피했다. 마음 같아선 손을 뻗어 밀쳐버리고 싶었지만, 쉽사리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왜 살렸는데.”

 “딸이 있대. 열아홉.”



 줄곧 시선을 피하던 사자의 눈이 오롯이 신을 향했다.



 “이제 곧 스무살 된다는데 그 딸의 마지막 십대 생일만 보고 가고 싶다고 몇 날 며칠을 울어서.”



 그것 참 도깨비다운 이유였다.



 “그 간절함이 마음 약한 도깨비의 마음도 울렸지.”

 “잘했네. 마음 약한 도깨비.”



 비꼬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사자는 가라앉는 제 기분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좀 비키지.”

 “고작 일주일이겠지만 그래도 저 여자는 행복할 거야.”



 사자는 피곤하다는 듯 느리게 눈을 꿈뻑거렸다. 그래. 행복할 거다. 볼 수 없었던 내일의 해를 볼 테고, 지는 밤의 이슬에 감사하겠지. 흐르는 시간을 온 몸의 세포에 새기고 그 세포 하나하나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담겠지. 제 딸의 마지막 십대 생일도 함께 보내며 신에게 감사하겠지.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걸까.


 이런 얘기를 자신에게 줄줄이 늘어놓는 도깨비의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평소처럼 서로를 약 올리는 장난의 연장선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맞받아치기엔 사자의 기분이 그걸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자꾸만 머리를 맴돌았다. 여자에게 행복한 일주일을 선물하는 건 도깨비고, 그걸 도로 앗아가는 것은 자신이라는 게. 자신은 가져갈 힘은 있으나, 다시 줄 힘은 없다는 게. 사자는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되는 게 싫었다. 자신의 힘이 전능함이 아니라 그저 전생의 죄를 상쇄하기 위해 주어진 벌이라는 것을. 그것도 이 도깨비의 앞에서라면 더욱.


 이 불편함을 더 견딜 수가 없어 사자가 몸을 옆으로 비틀어 피하려는데 신의 손가락이 느닷없이 그의 얼굴을 향했다. 금방 코끝에 닿을 듯 저를 향해 겨눠진 검지를 보곤 사자의 움직임이 일순 멈췄다. 뭐야. 눈으로 묻는 사자를 향해 신은 좀 전과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 여자는 마음 약한 도깨비 덕에 일주일을 행복하게 살 거고.”

 “…….”

 “일주일 후엔 마음 약한 저승사자가 찾아와 좋은 곳으로 인도해줄 테니 그것 또한 꽤 해피엔딩이지.”



 누가 누구 보고 마음이 약하다는 거야. 사자는 그 말이 제 입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입술은 굳게 앙다물린 그대로였다. 그런 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신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가늘어졌다. 창백할 만큼 하얀 피부, 곧게 뻗은 콧날, 꼭 핏물을 머금은 것처럼 붉은 입술, 그리고 물기가 밴 눈. 그래. 저 눈. 저승사자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투명하지. 전생에 끔찍한 죄를 저질러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지금만 해도 그렇다. 복잡한 마음이 저 눈을 통해 어찌나 잘 드러나는지. 신은 기침처럼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입안으로 꾹 밀어 넣었다.



 “얼굴도 뭐 썩 좋진 않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편이니까. 천국 가는 길 눈요기도 되겠네.”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게 가라앉은 목소리더니 마지막 말은 확실히 장난기가 서려있었다. 사자는 그제야 몸의 방향을 틀어 신에게 갇히듯 포위되어 있던 몸을 빼냈다. 귀 끝으로 열이 몰리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사자는 자신의 모자가 붉어진 귀를 가려줄 것이라는 사실에 새삼 안심했다.



 “망자가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몰라. 이 저승 법도도 모르는 무식한 도깨비야.”

 “네가 위에 말해서 힘 좀 써봐.”



 뻔뻔하게 내뱉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사자는 그저 콧방귀를 뀌었다. 그 얼굴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곁눈으로 슬쩍 확인한 신의 입꼬리도 묘하게 말려 올라간 것을, 아마 사자는 보지 못했으리라.



 “난 간다, 그럼.”

 “어, 제발 그래주라.”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오는 사자의 매정함에도 신은 익숙하다는 듯 개의치 않았다.



 “너는?”

 “내가 노냐? 아직 할 일 많이 남았어.”

 “그래, 수고.”



 몸을 돌리며 짧게 설설 손을 흔들어 보이던 신이 무언가 생각났는지 퍼뜩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밥은?”

 “남이사.”

 “집에 와서 먹어라.”



 마치 이런 대화쯤이야 매일 나누는 사이인 것처럼 어색함도 없이 내뱉는 신의 말에 사자는 하마터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릴뻔했다. 그런 자신의 익숙함이 기이해 순간 대답을 잊고 침묵하자 신의 얼굴 위로 그 특유의 장난기가 맴돌았다.



 “내가 특별히 시금치 스튜에 고춧가루 팍팍 뿌려줄 예정이니까.”



 말을 마친 신은 사자의 대답도 듣지 않고 지체 없이 푸른 불꽃을 빛내며 사라졌다. 저 나잇값도 못하는 도깨비. 사자는 한마디라도 쏘아주지 못한 게 분해 그가 사라진 자리를 향해 쾅 발을 굴렀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왜 넋을 놓고 있었나 싶었다.


 도깨비가 사라진 그 자리를 멀거니 보던 사자는 돌연히 떠오르는 생각에 크게 숨을 내쉬었다. 도깨비는 왜 그런 소리를 줄줄이 읊었던 걸까. 마치 변명처럼. 꼭 일부러 자신에게 말해주는 것처럼…. 사자는 갸웃 돌아가려는 고개에 화들짝 놀라 재빨리 머리를 털었다. 생각이 그런 곳으로 튀어선 안 된다. 예사롭지 않은 저승사자의 예지력도, 가끔은 그 방향을 잃을 수도 있는 법이리라. 어쩌면.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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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해버렸다 연성.. 뭐 왜 뭐..


* 우당탕탕 동거기 이런 거 나 너무 써보고싶었어..ㅎ 자기만족용

* 늘 그렇듯 연재를 목표로 하지만 뒤는 모름 후비적 ㅇㅅaㅇ

* 저승이의 이름은 아직 등장시키지 않을 예정. 사자는 사자다...

드라마에서도 아직 나오지 않은 이름이라 어디서부터 이름으로 불러야할지 감이 안 잡히므로.

일단 나도 이름이 입에 아직 안 붙었다. 왕...여...(머뭇)



+17.01.02

설정이 다소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약간의 수정을 했어요.

나는 저승이가 미래도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과거만 보는 거였네......? 흐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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