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조건

7. 개인 공간 존중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철저히 나만의 공간이어야 하는 집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 거니까. 아무리 사적인 영역을 존중한다고 해도 혼자 살지 않는 집에서 철저히 개인일 수는 없는 거다. 물론 의식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건 피할 수 있다. 이를테면 되도록 공동 생활 공간을 이용하지 않고 번데기처럼 방에 콕 틀어박혀 있거나, 많은 시간을 집 밖에서 서성이며 보낸다면 말이다. 바로 요즘의 사자처럼.


 하지만 작정하고 제 흔적을 드러내려 애쓰고 있는 이를 상대해야 한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얼굴을 마주하는 건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인기척까지 모른 척하기는 힘드니까. 가령 문 밖에서 의미 없이 서성이는 발소리라든가, 부스럭거리는 옷자락 소리라든가, 부러 들으라는 듯이 콜록거리는 마른 기침이라든가, 그런 것.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바깥의 소리에 온 세포를 집중 시키고 있던 사자는 느닷없이 문을 두드리는 노크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끝방 삼촌! 안에 있어요?”



 방 전체를 울리는 소리에 한번 놀라고, 동시에 들려오는 덕화의 목소리에 안심하듯 크게 숨을 뱉었다. 안도와 함께 묘한 허탈함 같은 것이 찾아왔다. 허탈? 허탈이라니. 덕화가 아닌 다른 누군가이길 바라기라도 했던 건가. 사자는 짧게 모습을 드러낸 제 속내를 애써 다시 가라앉히며 이불을 꼭 쥐었다. 그때 다시 한번 짧은 노크가 이어졌다.



 “저 그냥 들어가요?”



 사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 말이 입을 타고 흘러나오는 것보다 문을 여는 덕화의 손이 더 빨랐다. 사자의 입이 허무하게 다물어졌다. 늘 느끼는 거지만 덕화는 정말 두려움이라는 걸 모르는 아이였다. 저승사자의 방 문을 저렇게 허락도 받지 않고 벌컥 열어 젖히다니. 저런 걸 당돌하다고 해야 할지, 겁이 없다고 해야 할지. 도깨비를 모시며 사는 가신은 뭐가 달라도 다른 건가. 도깨비, 저승사자와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싶다. 적어도 사자가 아는 인간들 중에서는 덕화네 집안을 제외하고는 없다. 아니. 있나? 사자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작은 얼굴을 떠올린다. 기타누락자. 도깨비를 생각하며 그 아이를 빼놓을 수는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자의 기분이 축 가라앉는다. 자신이 떠올린 생각에 자신의 기분이 나빠진 꼴이었다. 사자는 결국 모든 생각을 관두기로 한다. 공연히 턱 밑까지 내려가 있던 이불을 코 끝에 바싹 붙을 정도로 끌어올렸다. 어느새 사자의 침대맡까지 다가온 덕화는 반쯤 가려진 사자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어 인상을 찌푸렸다.



 “끝방 삼촌 아직 많이 아파요?”



 그나마 반이라도 드러난 사자의 얼굴을 살피며 걱정스럽게 묻던 덕화가 혀를 쯧 차며 들릴락 말락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할아버지가 삼촌 아픈 것 같다 그래서 와봤더니 끝방 삼촌까지 아프다 그러고. 신들이 뭐 이래?”



 혼잣말인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중얼거리는 덕화의 말에 사자는 자신의 감기는 진즉 다 나았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대신 다른 말을 하기 위해 코까지 덮었던 이불을 살짝 끌어내렸다.



 “…도깨비 많이 아프대?”



 요 며칠 일부러 신을 피해 다니면서도 거실이나 부엌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기침 소리를 모르지 않았다. 연달아 기침을 하면서도 그 사이에 아이고 도깨비 죽네, 하고 티 나게 앓는 소리를 덧붙이는 게 누가 봐도 사자 들으라는 듯이 유난을 부리는 꾀병임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쉬이 외면할 수가 없었다. 꾀병이든 아니든 그 원인 제공자가 사자 자신이었기 때문에. 물론 더 정확히 따지고 보자면 그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무작정 입을 맞춘 도깨비의 탓이 더 클 것이다. 큰 손으로 사자의 얼굴을 감싸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입술을 맞댔던. 무슨 숨은 능력이라도 썼던 건지 도무지 움직일 수도 없게 만들었던 도깨비의 데일 만큼 뜨겁던 그….


 그날의 일을 떠올리던 사자의 시야 끝에 여전히 같은 자리에 멀뚱히 서 있는 덕화가 걸린다. 덕화는 갑자기 눈을 흐릿하게 뜨며 생각에 빠진 사자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보고 있다. 사자는 제 머릿속에 떠오르던 불경한 상상이자 현실이기도 했던 그날의 장면이 행여 덕화에게 전해지기라도 할까 봐 황급히 생각을 갈무리한다. 왠지 붉게 달아오른 사자의 양 볼을 보며 덕화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 삼촌보다 끝방 삼촌이 더 많이 아픈 것 같은데.”



 덕화의 말 뒤로 기다렸다는 듯 또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와 함께 도깨비의 목소리가 울린다.



 “아이고 도깨비 죽는다아아!”



 곧 죽는다는 말과 달리 그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집안 전체에 그의 목소리가 가득 찬다. 나오지도 않는 기침을 애써 쥐어 짜는 도깨비의 소리를 들으며 사자는 이불을 폭 뒤집어쓴다. 덕화가 대체 왜 둘 다 감기에 걸려 이 난리인 거냐며 어리둥절해 하는 것을 무시하고 눈을 감는다. 잠이라도 들어야 머리가 덜 복잡할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도깨비 꿈만 안 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새벽이었다. 마치 최면에 걸렸다가 깨어난 것처럼 느닷없이 눈꺼풀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누군가 리모컨으로 전원 버튼이라도 누른 것 같았다. 꿈이라도 꿨나. 갑작스러운 기상에 사자는 잠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린다. 창살을 넘어 아른아른 비치는 달빛이 익숙해질 때쯤 사자는 마침내 이불을 걷어낸다. 침대 밑으로 쑤욱 내려온 발이 새벽이라서인지 유난히 하얗다. 그는 무언가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침대를 벗어나 방문을 연다. 딸깍 소리를 내며 돌아간 문고리를 그대로 잡아 당기자 문밖에서 더운 기운이 훅 끼쳐온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사자는 고개를 돌려 제 방을 바라본다. 이상했다. 바깥의 공기가 사자의 방과 확연이 달랐다. 보일러라도 작동시켰나, 생각하기엔 그 차이가 너무 컸다. 문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도 숨구멍이 뜨거워질 만큼 더웠다. 숨통을 꽉 죄는 더운 공기가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짧은 기침을 하며 거실로 나온 사자는 제 목소리 뒤로 희미하게 신음 소리가 따라 붙는 것을 듣는다. 그 소리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사자가 낸 소리는 아니라는 거다.


 사자는 소리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해 입을 다물고 숨을 들이킨다. 사자의 소리마저 사라지자 진공의 공간처럼 조용해진 집안에 머지않아 다시 한번 신음이 울린다. 다시 들으니 신음이라기보단 통렬한 울음에 가깝게 들리기까지 했다. 어쩌면 난폭한 포효. 또 어쩌면 섬광 같은 비명.


 사자의 발이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움직인다. 천천히 움직이는 발걸음에 왠지 머뭇거림이 뱄으나 멈추지는 않는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그곳으로 간다. 소리가 선명해질수록 사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마침내 걸음이 멈췄을 때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자는 고개를 들어 제 앞의 문을 바라본다. 도깨비의 방. 그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사자의 온 몸을 푹푹 찌르는 것만 같았다.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톺아내는 도깨비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매섭게.



 “크읍….”



 분명 크지 않은 소리다. 그런데도 마치 사자의 귀에 대고 악을 써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 그 문을 열어보고 싶었다. 무언가 목에 걸린 것처럼 넘어가지지도, 다시 내뱉을 수도 없는 그런 기분이다. 사자는 자신의 속 어딘가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은 이 불쾌하고 갑갑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그 실체를 마주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걸 알아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몰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거실을 감싸고 있던 불길 같은 공기도 사그라졌다. 동이 아직 트지 않은 걸 보니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진 않은 것 같았다.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 건 그로부터 또 한참이 지난 후였다. 천천히 문이 열릴 때까지도 사자는 그 자리에 발을 붙이고 선 채였다. 열린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도깨비의 볼이 옴쏙 들어가 있었다. 불과 몇 시간만에 저렇게 얼굴이 상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신은 문 앞에 서 있는 사자를 보고 놀라지도 않았다. 사자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았던 건지, 아니면 놀랄 힘도 없는 건지. 신은 느릿하게 두 눈을 끔뻑이며 사자를 보다가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를 냈다.



 “너 때문에 감기 옮았어.”



 감기 따위 걸리지도 않았으면서.



 “며칠 동안 그렇게 아프다고 해도 나와보지도 않더니.”



 진짜 아픈 적도 없었으면서.



 “열 나니까 이제야 좀 나와보네.”



 감기 때문에 나는 열도 아니잖아. 사자는 그 말을 하지 못한다. 신의 뜨거운 이마가 사자의 왼쪽 어깨 위에 툭, 무겁게 내려앉아서. 그 열이 제게 옮은 감기 때문인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어깨를 내주고 서서는 내 약이라도 줄까, 그랬다. 신이 여전히 이마를 댄 채 희미하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 미약한 진동이 사자의 어깨를 타고 심장 박동과 함께 전해진다.



 “약은 필요 없고 잠깐 이러고 있어. 네 몸 차가워서 딱 좋다.”

 “…무거워.”

 “너 때문에 아픈 거니까 참아.”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그런데도 사자는 따져 묻지 않고 가만히 어깨를 내준다. 차라리 정말로 신이 감기에 걸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나 때문이라고 하니까. 며칠 전 제게 옮은 감기에 이렇게 아픈 것이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자신은 그에게 잠깐 어깨를 빌려줄 책임이 있고, 그의 고통을 덜어줄 의무가 있다고.


 사자의 어깨에 닿은 신의 이마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열기를 식혀갔다. 그런데 이상한 건 어느 순간 사자의 발치에서 뜨끈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사자는 제 어깨에 기대고 있는 도깨비 때문에 고개를 내리진 못하고 슬쩍 시선만 내려 아래를 바라봤다. 사자의 발등 위에서 신사가 검은 털 뭉치 같은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는 게 보인다. 무슨 한여름의 에어컨이라도 된 기분이다. 왜 다 나한테 들러붙어 옹기종기 모여있는 건데. 사자가 그렇게 생각하며 크게 숨을 내쉬자 픽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도 신이 낸 소리다. 이번에 들린 웃음 소리는 전보다 한결 가벼웠고, 평소 도깨비의 목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자는 그 익숙한 목소리에 조금 안심했으면서도 티를 내지 않으려 퉁명스럽게 어깨를 턴다. 적당한 친절을 베푼 뒤에 밀려오는 머쓱함 같은 걸 담아.



 “괜찮아졌으면 이제 좀 비켜.”



 신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다. 사자는 그의 이마가 떨어져 나간 어깨를 괜히 휘휘 돌리며 뻐근하다고 인상을 찌푸린다. 사실 별로 무겁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으나, 그냥 그런 척을 한다. 눈가에 살짝 웃음을 단 채 저를 바라보고 서 있는 도깨비를 보니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사자가 어깨를 들썩거리는 와중에도 사자의 발등에 붙어있는 신사는 여전히 떨어질 줄을 몰랐다. 사자도 발을 움직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그걸 본 신이 입을 연다.



 “인기 많은 저승사자네.”



 놀리는 게 명백한 어투에 사자가 그를 쏘아보자 신이 어깨를 들썩거린다.



 “멍청해서 그걸 모르는 것 같지만.”



 사자의 아랫입술이 그의 윗니에 깨물려 주름을 만든다. 할 말을 참는 사람처럼 입을 앙다문 사자는 제 입속에 담긴 말을 끝끝내 뱉지 않고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의 발등에서 휴식을 취하던 신사가 그 움직임에 파르르 떨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아쉬움이 가득 담긴 검은 눈동자가 사자를 올려다본다. 금방이라도 다시 사자의 발등에 착 달라붙어 휴식을 취할 것만 같은 신사를 사자는 의식적으로 외면한 채 돌아선다.



 “아프면 약 먹고 잠이나 자.”



 사자는 그렇게 말하곤 제 방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신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는 게 스치듯 보였지만 무시하고 돌아섰다. 그렇게 애를 써서 만들어낸 무심함은 방으로 들어온 후에야 잔상처럼 몰려왔다. 어쩌면 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통을 잠재울 약 같은 게 있을까. 약 같은 걸로 900년의 세월을 살아온 그 생의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약이 있다면 그 누구보다 그가 가장 절실하게 원하고 있지 않을까.


 사자는 머리를 털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람. 자신이 신경 쓸 건 그가 자신에게 옮았다고 주장하는 그 감기다. 약 몇 알 털어 넣으면 금방 사라질 감기. 그뿐이다. 사자는 딱 그 정도만 신경 쓰자고 생각한다.


 사자가 침대에 걸터앉는 순간 미처 완전히 닫히지 못했던 방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 작은 틈 사이로 신사가 걸어 들어왔다. 아직 침대 밑으로 나와있는 사자의 발 앞으로 걸어오는 신사의 발에 맞춰 차박차박 소리가 났다. 사자는 신사가 제 앞까지 와 자신을 올려다보는 걸 가만 바라본다. 신사는 다시 그의 발치에 몸을 웅크릴 것만 같은 기세다. 그걸 본 사자는 바닥에 붙어있던 발을 들어 올려 이불 속으로 감춰 넣는다. 신사의 검은 눈동자가 저를 향했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뻔히 알 것도 같았지만 사자는 그냥 몸을 뉘어버린다. 잠이 오지 않지만 눈을 감는다.



 “졸리면 네 자리에 가서 자.”



 사자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뿐이었다. 너의 피곤을 달래줄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 사람보다 체온이 조금 더 높은 신사는 보통 사람보다 차가운 사자의 체온을 좋아하겠지만, 그런 것 따위는 그저 일시적인 도피일 뿐이라는 것. 모든 것엔 역할과 소임이라는 게 있는데, 적어도 사자의 발등이 신사가 잠을 자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는 것. 그러니까 멍청한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사자는 신사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말하다 보니 그게 누구를 향하는 건지 대상도 분명치 않았다. 아무튼 간에 결론은 사자는 다시 신사에게 제 발등을 빌려줄 생각이 없다는 거였다.


 침대에 누운 사자를 빤히 바라보던 신사가 한참 후에야 그의 방을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작은 발소리를 듣는 사자의 머릿속이 뒤죽박죽 난잡해졌다. 기분이 엉망이었다. 제 말이 다 맞고, 지극히 세상의 이치에 맞는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내려진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틀린 것만 같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었다. 도깨비의 말처럼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래도록 잠에 들지 못했다.











 “나 열이 좀 나는 것 같은데.”



 또 시작이다.



 “열 나는 것 같다니까.”

 “어쩌라고!”



 도깨비의 꾀병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 티비를 보다가, 빨래를 개다가도 문득 열이 난다는 둥 춥다는 둥 갖은 엄살을 다 부렸다. 천하태평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반질반질한 얼굴로 말하는 이번 꾀병의 목적은 나 아프니까 나가서 아이스크림 좀 사와라, 였다. 사자는 채소를 콕콕 집어 먹고 있던 포크를 도깨비의 뒤통수에 날려주고 싶은 걸 꾹 참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네가. 사서. 쳐먹어.”



 애써 평정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자의 말이 한 어절씩 끊기며 이어졌다. 신은 그 흉흉한 기세에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는 건지 여전히 눈을 텔레비전에 고정한 채 얄밉게 말한다.



 “너 때문에 감기까지 걸린 사람한테 너무하네.”

 “대체 그 감기는 언제까지 가는데!”



 그 날로부터 손가락 열 개로는 다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날이 지났는데도 도깨비는 아직 감기 타령을 하고 있었다. 감기는커녕 콧물 한번 훌쩍거린 적 없으면서 잊을만하면 기침을 하며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곤 했다. 물론 본래 철딱서니 없는 도깨비의 성질에는 이미 이골이 난 사자는 신의 그런 장난질쯤이야 대꾸도 않고 무시해줄 수 있었지만, 문제는 사자가 그냥 무시하려고 할 때마다 이어지는 도깨비의 뻔한 레퍼토리였다.



 “나한테 감기를 옮긴 저승사자가 그 날 일을 모른 척하지 않을 때까지?”



 그때의 일을 상기시키는 저런 말. 사자의 손에 쥐어졌던 포크가 기어이 얼어붙는다. 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리가 맺혀버린 샐러드 접시를 그대로 싱크대에 처박아버리곤 돌아선다. 어느새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고 사자를 바라보고 있는 도깨비와 눈이 마주친다. 마냥 사자를 놀리는 것만 같던 눈이 꽤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다. 사자가 그 눈빛을 보고도 무심히 지나치려 하자 신에게서 아아, 하고 낮은 한숨 같은 것이 흘러나온다. 마치 이제 정말 지치고 질린다는 듯한 허무한 기색. 그 소리에 사자의 발이 우뚝 멈춘다. 우습게도 그 순간 조금 겁이 났다. 신이 그때의 일로 자신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이런 순간을 애써 피하려 하면서도, 정말 그가 다 없었던 일로 치자고 그만둬버릴까 봐.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걱정이 되어서. 사자는 이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신이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체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은데.”



 나무라는 것 같은 말이었지만, 말투는 따뜻하다고 느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울컥했는지도 모른다. 그 부드러운 말투에 금방 마음이 요동을 치고 마니까. 신을 향해 돌아선 사자는 일부러 성을 내는 사람처럼 부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나야 말로 좀 묻고 싶다. 넌 대체 무슨 생각이야?!”

 “내가 뭘.”



 묻는 신의 목소리가 너무 태연하고, 정말 몰라서 묻는 것 같기도 해서 사자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만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날의 일을 거론하며 사자를 곤란하게 하는 도깨비라면, 적어도 지금 자신들에게 던져진 이 상황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자는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지긋지긋한 불사의 생에서 도망치고 싶어 900년이나 도깨비 신부를 찾아 헤맨 건 자신이 아니라 도깨비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도깨비 신부를 찾아내고 만 것도 그였고. 물론 아직 검을 보지 못하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상 그 기타누락자가 도깨비 신부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도깨비는 지금 자신에게 대체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걸까. 네 가슴에 꽂힌 검이고 뭐고, 네 인생을 고통으로 물들게 하는 그것들을 다 뒤로 하고 그냥 네가 좋다는 말이라도 듣고 싶은 걸까.


 사자는 며칠 전 새벽 처음으로 마주했던 도깨비의 그 끔찍한 고통을 다시 떠올린다. 마치 제 가슴에 칼이 꽂힌 것처럼 생생하고 묵직했던 공포.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그 아픔. 그건 절대로 치료할 수 없는 병균처럼 그의 평생을 갉아먹을 텐데 정작 신은 그런 것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전혀 없어 보였다. 사자는 이런 걸 신경 쓰는 자신이 유난스러운 건가 싶기까지 했다.


 왠지 지금 이 일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그 핀트가 자신과 전혀 다른 것만 같은 신에게 사자는 대체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확실하게 드는 생각은 도깨비가 자신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들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사자가 신을 향하는 제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 인해 김신이라는 남자가 겪어야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고민. 사자가 그에게 손을 뻗지 못하는 이유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김신, 이 남자에게 있다는 것.


 사자가 그 속마음을 차마 꺼내지 못해 머뭇거리는데 일순 신의 낯빛이 변했다. 사자를 마주하고 있지만 신경은 다른 쪽으로 쏠린 것처럼. 눈에 띄게 굳은 안색을 보고 사자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신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튀어 나온다.



 “지은탁한테 무슨 일이 있나 봐.”



 신의 심각한 목소리를 듣고도 사자는 그 이름에 맥이 탁 풀려 속으로 실망하고 마는 자신을 옹졸하다고 꾸짖는다. 신은 무언가 느껴지는 듯 미간 사이를 찌푸렸다. 아마도 그들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무언가로 인해 은탁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말을 마친 신이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몸을 일으키는 모습에 사자는 억양 없는 목소리로 ‘아’하는 소리를 낸 게 다였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는 말 속에 내포된 의미를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럼 가봐야지, 하는 대답이 곧장 나오지 않아 스스로도 난감했다. 사자는 고개를 돌린 신과 다시 한번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 수 있었다.



 “얼른 가봐.”



 그렇게 말한 사자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진다. 그대로 신을 마주하고 있으면 제 속내를 들킬 것 같았다. 꼭 네가 가야 하느냐고. 그게 지금이어야 하냐고. 그런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하며 주제 넘는 소리를 해댈까 봐 스스로 입술을 깨무는데, 머리 위에서 들리는 신의 말이 뜻밖이었다.



 “같이 가.”



 잘못 들은 건가. 잘못 들었겠지, 분명히? 아니면 도깨비가 저도 모르게 헛말을 뱉은 거겠지? 사자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에 대해 멋대로 해석하며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되묻기도 전에 신이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같이 가자고.”

 “미쳤어?”

 “이게 미칠 일이야?”

 “기억 지울 일이라도 필요해?”

 “아니.”

 “그런데?”

 “뭐가?”



 대체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할까. 사자는 도깨비가 원래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 먹었던 건지, 자신이 말을 잘 못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에 이른다. 천연한 표정으로 서 있는 도깨비를 향하는 사자의 목소리에 짐짓 짜증이 담긴다.



 “위험하다며! 그런 데에 나까지 같이 가면 기타 누락자 놀라 나자빠져.”

 “그게 뭐.”



 이 정도 얘기했으면 좀 알아들었겠거니 싶었더니 또 되묻는 신의 모습에 사자의 입에서 헛기침이 튀어나온다.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 사자를 향해 신은 제가 더 답답하다는 듯 삐딱하게 다리를 틀곤 제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뭐라 더 말을 하려는 사자의 말을 톡 자르고 먼저 입을 여는 신의 어투가 확연히 까칠해졌다.



 “너 진짜 어디 좀 모자란 거 아니냐?”



 신은 제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자신의 감정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구겨지기도 했다가, 구부려져 올라가기도 했다가, 위로 치솟기도 하는 신의 눈썹을 사자는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신이 알아챘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사자는 그 얼굴과 목소리에 담긴 공격성에 조금 어깨가 움츠러들었던 거였다. 그래서 난데없이 모자라다는 소리를 들은 것에 미처 반박도 못하고 서 있자 신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진짜 어디 모자란 애가 아니고서야 아직도 사리 분별 못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지는 않을 테고.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 내가 어떤 마음인지도 어느 정도 알 거 아냐. 근데 너는 이런 순간에마저 그냥 내빼시겠다? 여전히 모른 척하고 있겠다 이거지?”



 그럼 네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신의 등이 매정했다. 이번엔 신도 꽤 화가 난 것 같았다. 사자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하는 말도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내뺀다느니, 모른 척한다느니. 사자가 지난 며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오지도 않을 미래를 그려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낸 상상의 결말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사자의 기분도 결정지어 진다는 것을 모르면서. 신은 사자가 마냥 이 상황을 회피하고만 있다고 말했다. 신이야 말로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만한 사자의 고민을 모른 척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치밀어 사자가 억울함을 담아 소리쳤다.



 “나보고 뭐 어떡하라고!”

 “누가 너보고 뭐 어떻게 해달래?!”



 획 고개를 돌려 답하는 신의 눈이 이글거렸다.



 “난 너한테 뭐 해달라고 한 적 없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건 너야!”



 그래서 화를 내는 걸까. 사자가 아무 것도 못하고 있어서? 그게 신을 저렇게 화나게 한 걸까. 사자는 그가 화를 내는 이유를 듣고 나니 문득 다시 묻고 싶어진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진짜 화를 내야 하는 건 누구일까. 너일까, 나일까. 너와 나, 둘 중 누가 더 화가 날까.


 하지만 사자는 화도 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는 너는 뭘 하고 있느냐고 덩달아 묻고 싶은데, 신의 입을 통해 자신이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자 혼자 치열하게 고민하며 보냈던 그 며칠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가 얼마나 괴로웠든 아직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제자리에만 서 있다는 것을 차마 부인할 수가 없어서. 제가 뱉는 모든 말이 자신에게마저 변명이 될까 봐.


 큰 소리를 내고 쉬익 크게 숨을 뱉어내는 신을 바라보는 사자의 표정이 왠지 망연하다. 그 백지 같은 얼굴을 보고 신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중얼거렸다.



 “멍청한 게 지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대체 짧은 대화 속에서 멍청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은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사자는 그것에 분한 마음을 토로하지 못한다. 멍청하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정말 멍청해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괴롭기는 한데, 그 괴로움 끝에 내가 얻고 싶은 게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느라 그의 말을 맞받아칠 여력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 신에게 물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묻고 싶기라도 했다. 알면 네가 좀 알려주든가. 그렇게 속으로만 생각하는데 신이 또 그 말을 들은 것처럼 곧장 말을 이었다.



 “그날 분명히 얘기했어, 난. 네가 찾으라고.”



 그런 말을 했던가. 그랬던 것도 같고. 사자가 더듬더듬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데 신이 다시 한번 몸을 돌렸다. 이번엔 정말 가려는 것 같았다. 돌아보지 않는 등이 저렇게 냉정할 수가 없겠다 싶을 만큼 차가워 보이는데, 걸음을 옮기는 발끝은 무거워 보인다면 그건 사자의 착각이었을까. 문을 향해 걸어가는 신의 발자국을 눈으로 좇던 사자의 눈동자가 문 앞에 멈춰 선 발과 함께 그 자리에 붙박였다. 그 눈길에 붙잡힌 듯 신의 두 다리가 멈춰 섰다. 새카만 구둣발의 끝은 여전히 문이 열리는 방향을 향한 채였으나, 그 위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렸다.



 “또 혼자 나 올 때까지 온갖 상상 다 하고 궁상 떨 거면 그냥 좀 따라 나오라고.”

 “…….”

 “그 꼴 보고 있기 싫으니까.”



 신의 등이 문 뒤로 사라졌다. 대체 누가 궁상을 떤다는 걸까. 사자는 신이 남기고 간 말에 기가 찼다. 그리고 더 기가 찬 것은 그가 사라진 문 뒤를 서둘러 따라붙는 자신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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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너무 오랜만에 올리는 글이라 뭐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큽...

1월에 올렸던 전편의 뒤를 이제야 이어 붙이면서 저도 참 어색하고 그르네요..

혹시 기다렸던 분들이 있으시다면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말과 변명이라도 먼저 해야겠죠? ㅠㅠ


하필 바쁜 시기가 겹쳐 글을 오래 못 썼고,

그 바쁜 시기가 지난 후엔 글을 오래 못 써서인지 도무지 써지지가 않아서 또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약속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게 됐습니다.

잊고 지냈던 건 아니에요.

달아주시는 댓글들 감사하게 읽으며 꼭 써야지, 하는 마음은 늘 먹고 있었는데,

손이 마음처럼 술술 움직여주질 못해서... 흑

지금 올리고 있는 이 글도 뒤에 이어질 내용까지 다 붙여서 한 편으로 올리고 싶었는데

그러면 또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1/2편 먼저 올리게 됐어요.


오래 놓았던 글이라 올리면서도 참 부끄럽고 그런데,

그래도 기다렸던 분들이 즐겁게 읽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어요.

글의 내용은 삽질하는 깹사로 인해 그렇게 유쾌하지 못하지만....그래도 저의 마음은.....♡


이 다음편도 얼마나 지나야 올라올지 저 역시 장담은 못하겠지만,

스스로에게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라보겠습니다 8ㅅ8


늘 고맙습니다. 진짜루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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